[문화] 회고록 작가라는, 내키지 않는 타이틀
나는 탐사 보도 저널리스트로서 북한에 잠입한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비판뿐이었다.
(역주: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간 재미교포 작가. 2003년 장편소설 <통역사(The Interpreter)>를 발표했고, 2011년 평양 과학기술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후 그 경험을 2014년 <평양의 영어 선생님>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북한에서 겪었던 일을 TED2015 세션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작년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 나는 패널석에 앉아 내가 도무지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장소에 오게 된 일련의 사건들을 정리해 보려 애썼다.
내 옆에 앉은 작가들은 세 명의 여자였고, 상실, 가족, 자아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난 회고록을 썼다. 역시 여자들이 다수인 청중의 질문도 각 작가들이 감정을 일깨우고 성장시킨 과정에 집중되었다. 지금껏 거쳐온 영적 여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길을 걸으면서 어떤 교훈을 배웠는지?
나는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책은 회고록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탐사보도 저널리스트로서 10년 넘게 북한을 취재하고 방문도 했다. 2011년 책을 쓰겠다는 계약을 맺은 후 ESL 교사로 위장하고 평양의 어느 복음주의 대학(역주: 이 글에서는 “복음주의 대학(at an evangelical university)”으로 나오지만 실제 이름은 평양 과학기술대학이다.)에 잠입 취업했다. 내가 가르친 270명의 학생은 북한 고위 간부의 아들들로 엘리트 계층이었고, 김정은의 통치 아래 체제 변화를 보여줄 얼굴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북한은 실질적으로 감옥이나 다름없는 국가로, 저널리즘을 실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시민에게 말을 걸어봐도 당의 방침을 벗어난 내용은 나오지 않고, 북한에 대한 정보 대부분은 짧은 기간 북한을 취재 방문하거나 진실성을 입증할 수 없는 탈북자들의 말을 녹취하여 재포장한 서방 저널리스트들에게서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하므로 북한이 그런 저널리스트들에게 붙이는 공식 통역자의 검열을 거칠 필요가 없었기에, 표면 아래 미묘한 정서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북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동안 철저한 감시를 받는 폐쇄된 구내 시설에 거주했다. 모든 방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었고, 모든 수업은 기록되었다. 나는 대화가 이루어지면 그 내용을 종이쪽지에 휘갈겨 쓰고 학습 계획안에 숨겨두었다. 밤에는 노트북으로 글을 쓴 다음 전원을 끄기 전에 파일을 지워버렸다. 지우기 전에 파일을 옮겨 저장해둔 USB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취재 내용은 SD 카드에 백업했고, 카드는 방의 불을 끈 다음 매번 장소를 바꾸어 가며 숨겼다. 방에 카메라가 있을지도 몰라서였다. 반 년 후, 나는 40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가지고 미국에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만사가 이리저리 꼬여 뒤죽박죽이 된 상황에 처했을 때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면,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이 그렇게 어그러졌는지 정확하게 짚을 수 있을 때가 있다. 10년 동안 북한을 취재하면서 나는 그런 순간이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항상 두려웠다. 북한에서는 내 운명을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결국 그 순간은 뉴욕에서, 내가 초안 작업을 마쳤을 때 발생했다. 책을 출판하기 반 년 전, 담당 편집자가 책 표지안을 보냈다.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고 – 북한 엘리트층 자제들과 보낸 시간(Without You, There Is No Us: My Time With the Sons of North Korea’s Elite)>이라는 제목 아래 “회고록”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나는 곧장 편집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내 책이 회고록으로 분류되는 건 몹시 불편합니다. 이 책을 회고록이라고 하면 취재한 내용이 사소해 보일 것 같습니다.” 회고록이란 단어는 어쨌거나 기억을 암시한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문제들을 저자 자신의 경험으로 되짚어보는 느낌이 든다. 내 책은 문학적인 성향이 있고 때로 개인적인 내용도 담겼지만, 기본적으로는 탐사 보도를 이야기로 서술한 것이다. 나는 단순히 내가 북한이라는 세계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전달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그 속에서 타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보도하려 했다.
편집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책이 1인칭 시점에서 씌어졌음을 언급했다. 내가 1인칭 시점을 채택한 것은 다른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그랬던 이유와 같았다. 내가 취재한 사실을 서사 구조로 구성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편집자는 이 책을 저널리즘으로 분류하면 책을 선택할 독자층이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일반적으로 회고록은 탐사 보도물보다 더 잘 팔린다.
나는 한 번 더 반박해 보았다. “이 책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역주: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메가 베스트셀러. 잘 나가던 미국 여성이 이혼과 우울증을 겪으면서 혼자 1년간의 여행을 떠나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내용.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었고, 2010년 줄리아 로버츠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가 아니에요.” 나는 편집자 겸 에이전트와 전화를 하다 이렇게 항변했다.
“설마 그 정도까지 유명해지진 않겠죠.” 내 에이전트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나는 내 책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신분을 위장하고 북한에 들어가 취재했던 유일한 저널리스트로서, 나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는 이야기를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투옥될 위험을 무릅썼다. 내 책을 전문적인 내용이 아닌 개인적 기록으로 광고한다면, 나를 상상하기 어려운 임무를 해낸 기자가 아니라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여자로 마케팅한다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에 대한 내 전문성은 다 벗겨져나갈 것이다. 미묘한 위치 이동이지만,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직 여성이 겪는 익숙한 상황이기도 했다. 나는 믿을 만한 권위를 지닌 위치에서 정서의 영역으로 옮겨지는 것이었다. “당신이 알아낸 내용은 무엇입니까?”가 아니라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이 확실해졌고, 나는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책의 내용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이 책에 어떤 딱지가 붙고 어떻게 마케팅이 되든 간에, 내가 보도한 내용은 자명한 것이니까.
출판 날짜가 다가오자 초조해졌다. 북한의 대학은 내게 협박 이메일을 보내 초안 원고를 제출하고 출판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민영 교도소에서 정신병원에 이르기까지, 일반 대중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기관에 신분을 위장하고 들어가 취재를 하는 탐사 보도 저널리스트가 잠입했던 기관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니까. 북한에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한 그 복음주의 단체는 북한 정권과, 북한을 이끌어갈 미래의 지도자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내 본명으로 북한에 들어갔고, 내가 보유하고 있던 자격으로 무보수 교사직을 따냈다.
미국 전문 저널리스트 협회의 윤리강령에 따르면, 기자는 “정보를 얻기 위해 위장을 하거나 여타 은밀한 방식은 피해야 한다. 다만 전통적이고 공개된 방식으로는 대중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정보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예외” 다. 북한은 핵을 보유한 데다 비밀스럽기 짝이 없는 나라이다. 대중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는 정보 중에 북한보다 더한 정보가 있을까? 공개된 방법으로는 도무지 취재가 통하지 않는 나라 중에 북한보다 더한 나라가 있을까?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 UN은 “동시대에 북한과 맞먹을 만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내가 가장 염려했던 것은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존의 저널리즘 관행을 착실히 따랐다.
하지만 2014년 가을 내 책이 드디어 출판되자, 책에 대한 반발은 북한에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왔다. 바로 다른 기자들이었다. 출판사가 내 책을 홍보하기 시작하자 저널리스트 여럿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 나를 맹렬히 비난했다. 내가 신분을 위장한 것을 두고 “몹시 부정직했다”고 지적했고, “폭로에만 초점을 둔 회고록”을 쓰려고 평양 과기대에서의 경험을 이용한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붙였다. 또한 아무 증거도 없으면서 내가 “정보 제공자들을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이들의 눈에 나는 저널리즘의 영역을 침범한 회고록 작가, 자신의 학생들을 팔아 쉽게 돈을 벌어보려는 한국인 교사로 비쳤나 보다.
이런 공격 대부분은 내가 쓴 글의 본질인 탐사 보도의 결과는 무시하고 내 방식에 초점을 두었다. “그녀가 쓴 글은 충격적이지도 새롭지도 않다. 그녀는 거짓말을 했고 돈을 벌려고 사람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트위터의 흔한 반응이었다. BBC 라디오와 인터뷰를 했을 때는 진행자들이 평양 과기대에서 방송국에 보낸 고발장을 큰 소리로 읽었고, 나를 고용한 측을 배신한 것이 아니냐는 투로 말했다. 페이스북에서 벌어진 토론의 장에서는 “나를 오로지 책을 써서 돈을 벌 목적만으로” 북한에 갔다고 비난했다. 내 책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 메일함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낸 메일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량한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죠.” 같은 내용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잠에서 깼더니 이런 트위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뒈져 버려."
나는 (세계적인 서평지) 커쿠스(Kirkus)에 올라온 첫 서평의 첫 문단에서만 “기만하다”와 “속임수”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온 것에 충격을 받았다. <시카고 트리뷴>은 내 윤리 의식을 문제 삼았다. “수키 김의 책은 이 정도의 통찰이 무고한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골치 아픈 의문을 제기한다. 그 사람들 중 누구도 그녀가 평양에 있었던 진짜 이유를 몰랐다.” <로스앤젤레스 북리뷰>는 이보다 더 나갔다. “수키 김은 정직하지 않았기에 공개적인 비판에 직면했고, 이런 비판은 정당하다. 신분을 숨긴다는 그녀의 선택은 윤리적으로 볼 때 그녀의 글에 대한 신뢰성에 의심이 가게 하며(회고록이 지니는 또 하나의 위험이 바로 이것이다), 그녀는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피해망상과 불신이 섞인 눈으로 북한을 보고 글로 묘사했을지 모른다.”
내 책은 탐사 보도 저널리즘의 서사 구조에서 일반적으로는 찬사를 받는 바로 그 요소 때문에 가치를 묵살당했다. 수상 경력에 빛나는 <뉴잭(Newjack)>(역주: 저널리스트 테드 코노버가 싱싱 교도소에서 10개월간 교도관으로 일하며 느낀 경험을 묘사한 책으로,퓰리처 상 최종심사까지 올랐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상을 수상했다.)의 저자 테드 코노버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교도소 체제를 탐사했고, <뉴욕 타임스>는 “표면 아래로 깊숙이 들어가” “진짜” 보도를 해냈다고 그를 칭송했다. 베스트셀러 <노동의 배신(Nickel and Dimed)>을 쓴 바바라 에런라이크(역주: 2001년 저임 노동자의 생활을 잠입 취재한 <노동의 배신>이 15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유명해졌고, 우리나라에도 <긍정의 배신>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근로빈곤층의 실태를 폭로하는 글을 쓰기 위해 웨이트리스, 호텔 청소부, 판매원으로 신분을 위장하는 것으로 널리 찬사를 받았다. 저널리스트는 신분을 위장하고 잠입 취재하는 것이 대개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명예로운 훈장이다. (얄궂게도 내 책은 회고록으로 잘못 분류되면서 저널리즘 쪽의 상을 받을 자격도 박탈당했다.)
반발은 미디어 밖에까지 확장되었다. 홍보를 위한 북 이벤트에 가보면 영락없이 청중 중에 손을 들고 내 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개는 백인, 그리고 남성이었고, 예외 없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요지는 항상 같았다. 자신이 직접 북한에 가봤거나, 아니면 북한에 가본 사람을 아는데, 북한은 내가 책에서 쓴 것처럼 그렇게 나쁘거나 위험한 곳이 아니었으며, 그래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책을 팔아먹으려고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틀에 박힌 듯 되풀이되는 공격 때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을 실제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세계에서 사람 목숨을 가장 가벼이 여기는 독재자의 나라에 직접 가보고 취재한 내 경험을 이토록 묵살하려고 기를 쓰는 것일까? 어떤 면에서인지 내 책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들의 남자로서의 자존심, 세계 정세 전문가라는 존재감을 훼손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는 그런 전문가가 아니라도 말이다. 어쩌면 자신들이 북한이 주는 공포와 연루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죄책감을 부정으로 전환시키는, 기본적인 생존 본능이 발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동기야 무엇이든, 그들은 나를 공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대한민국 출신의 여성이니 북한에 간 것은 “고향”에 돌아간 것이나 다름 없으며 따라서 잠입 취재를 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비난을 했다. 내가 쓴 글은 개인적인 성격을 띠며, 따라서 당연하게도 권위 있는 책이 될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북한에 관한 책은 두 종류뿐이다. 백인 저널리스트들이 북한 정권의 감시 하에 북한을 방문하고 쓴 책이거나,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쓴” 회고록이거나. 여기서 지적 계층 구조가 명확히 드러난다. 권위가 있으려면 백인의 시선이어야 한다. 또한 오리엔탈리즘도 판을 친다.
내가 보기에 기자로서 내 전문성을 조직적으로 훼손하는 작업은 <뉴욕 타임스>의 서평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내가 충격을 받은 사실은 그 서평이 긍정적이고 아니고 여부가 아니라, 서평을 쓴 사람이 한국 출신의 전직 TV 칼럼니스트로 대한민국의 대중 문화에 관련된 한 권 분량의 논픽션을 써본 것이 전부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출신은 제쳐 놓고라도, <뉴욕 타임스>의 편집진이 대체 왜 대중 문화 전문가가 독재국가를 진지하게 탐사 보도한 책에 대한 서평을 쓸 자격이 있다고 보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유수한 신문사에게 내용과는 아무 관련 없이 그저 아시아인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책의 서평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아시아계 여자인 나를 탐사 보도 저널리스트로 봐주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내가 직업을 밝힌 후에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인격이 형성되던 시기에 미국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으로 지냈기에, 나는 어떻게 내 목소리를 죽여야 하는지 잘 안다. 내 어조 때문에 나를 순진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도 제법 있다. 나는 필요할 때 모습을 감추는 데 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뚜렷이 보이는 약점이 실제로 장점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탐사 대상자들은 내가 덜 위협적이라고 느낄수록 경계를 풀고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으며, 덕분에 티 내지 않고 어떤 세계 속으로 잠입해 글을 쓰기가 쉬워진다. 조안 디디온(역주: 국내에는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이어온 남편을 잃은 경험을 쓴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 정도만 번역되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의 유명 작가. 실제로 몸집이 아주 작고 마른 체구의 여성이다. )은 <베들레햄을 향한 경배(Slouching Towards Bethlehem)>에서 “기자로서 내 장점은 몸집이 작고, 남의 관심을 끌지 않고, 신경과민일 정도로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있으면 자신들의 가장 큰 이익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차별의 결과는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내가 기자로서 만나는 사람은 대개 남자이며, 그것도 여자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려 들기를 좋아하는 남자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설명을 하게 놔둔다. 나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천성이 조심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 세세한 사항들에 진심으로 매혹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결국 내 글이 된다.
나는 최근에 에이드리언 니콜 르블랑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10년 동안 사우스 브롱크스(역주: 뉴욕 시에서도 가난하기로 손꼽히는 지구로 마약과 범죄의 소굴)에 사는 가족의 삶을 연대기로 다룬 <무작위 가족(Random Family)>의 저자이다. 르블랑은 내게, 그 책이 출판되었을 때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 부분은 꼼꼼한 보도 자체보다는 책 속의 취재 대상들과 그녀의 정서적인 연대감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종군 기자가 되어 어느 부대를 자세히 취재한 책을 펴냈다면 내가 그 책을 쓰기 위해 발품을 무수히 팔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주었겠지만요.” 르블랑은 이렇게 말했지만, 그녀 역시 위대한 문학 저널리즘은 가슴과 두뇌가 적절히 융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지금 같은 보도를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어떤 분야를 취재해서 보도해야 할지를 판단할 때 내 정체성도 관련이 있으니까요.”
나는 내 책이 일으킨 반응을 의연하게 받아넘겼다고 말하고 싶다. 그 모든 비난과 일축을 견뎌냈고, 그 인과관계도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느낀 분노는 내가 지금껏 겪었던 그 어떤 감정보다 깊었다. 마치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음산한 호텔방에서 미니바의 싸구려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야 했던 1년에 걸친 책 홍보 투어가 끝날 무렵이 아니라, 13살 나이에 영어를 못하고 무력한 이방인으로서 미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로 시작되었던 것 같았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거주지역에서, 나는 입양 가족에게서 배웠다. 내 피부는 노란색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노란색은 어릴 적 한국의 내 고향에서 가득 피어나던 개나리꽃의 색이다. 그 후로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 때의 소녀였다. 그리고 이제 그 소녀는 더 이상 말을 못하지는 않지만, 목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나는 이런 감정과 싸우다가 느꼈다. 내 분노가, 그 내밀한 안쪽이, 왜 내가 글을 쓰는지 그 이유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나는 내 안을 뒤흔드는 것들을 달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었다. 텅 빈 페이지를 마주할 때면, 그 페이지가 더 넓은 세계를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유혹한다. 내가 드물게 꾸는 꿈 중에 암흑 속에 혼자 남는 꿈이 있다. 내 의식 가장자리에는 절규가 도사리고 있어 바깥에 존재하는 외침을 억눌러 버린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글을 써서 내부에서 외부로, 부조화로 가득 찬 세계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또한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려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신분을 숨기고 북한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나는 2천 5백만 명의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이 지금 같은 세상에 현대판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부당함을 안 이상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가 없었다. 이 잔인한 현실을 취재한 내용이 이토록 조직적으로 훼손된다는 것이 내가 미국에서 공포를 느끼는 현상을 드러내는 징후가 아닐까 한다.
이 글에 아이러니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내 기억을 샅샅이 더듬고,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계속해서 되짚다 보니 이 에세이에서 나는 회고록 작가가 되어버렸다. 내 책은 북한에 관한 책이지만, 이 에세이는 나에 대한 글이다. 내게는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처지를 길게 늘어놓는 행위가 몹시 창피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이 글에서 독자 여러분에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정을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탐사 보도 저널리스트이니, 내 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나는 진작 저널리즘이라는 배타적인 세계에서 배척당했다. 어쩌면 내 분노는 그런 배척에 대한 반응이다. 유색인종 여성으로 지금도 백인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직업 전선에 몸담고 있기에, 내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주제를 탐사하거나 이 세계의 복잡한 구조를 조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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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렇게 많지.. 3점짜리는 정확하게 풀어야겠다.. 4점짜리도 맞다고 생각한 게 왜 틀렷을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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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남잔데 여자 빌런보다 남자 빌런이 더 많은 것 같음 성별 갈등 일으키는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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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생 3개년 기출=현장응시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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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5
아 돈 워너 비 윗아윳 유 걸 마지막인사는 접어두길바래 오늘 단하루맠큼
왜 더 안올라오나요 ㅜㅜ
요즘 기사가 안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