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 대나무숲] 어린 시절 바둑 영재였던 썰
일단 반말체로 쓸게요.
지금으로 치면 유치원 CA로 바둑과 컴퓨터를 했던 나는 바둑시간이 제일 재밌었다.
CA와는 다르게 정규수업인 바둑시간이 되면, 4층이던 유치원에서 3층으로 쫄래쫄래 원장선생님과 함께 내려갔다.
나이 지긋하신 서울대졸이자 전문대 유교과 졸업하신, 뜻이 있어 유치원을 개원한 원장님은 매번 우리반 바둑시간이 되면 같이 내려오셨다.
처음 몇번은 같이 내려오지 않으셨다.
5번 째 쯤이였나, 그 때 바둑학원 프로 7단 원장님이 정규수업 때의 내가 계속 이기는 것을 보고 원장님께 귀띔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프로 4단이던 유치원 원장님은 바둑 정규수업 때마다 나와 대국하셨다.
그 때의 나는 바둑의 규정 따윈 몰랐다.
그저 흰 돌이 좋아서 흰 돌을 썼고, 한국식 중국식 룰도 모르고 친구끼리 할 땐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다.
벽을 만들어 상대의 돌이 갇히게 하면 그 돌은 밖으로 쫓겨나고, 그 돌의 갯수로 승부를 가른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그런 룰만 숙지하고 겨루는 대국에서 내 또래 애들은 모두 나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프로 4단이던 유치원 원장님은 다르셨다.
내가 지금도 잘 모르는 불문율을 깨도 원장님은 그려려니 하며 계속 독려하시고 대국을 이으셨다.
연속된 패배, 계속된 좌절에도 난 유치원생 특유의 기억상실로 다음날이면 다시 대국했다.
CA시간에는 초중학생 정도의 본격적으로 바둑을 준비하는 형누나들과 붙었다.
그러다 원장님과의 대국이 20번 째가 되자, 처음으로 원장님을 이겼다.
같이 계시던 유치원 선생님께선 그걸 보시고 원장님을 놀리셨다.
"유치원생한테 지다니 원장님도 실력이 녹스셨나봐요."
난 그 어린 나이에도 원장님의 수를 읽었다.
나였다면 그렇게 두었을 것이다.
나였으면 그렇게 두고, 대책없이 당했을 것이다.
나, 프로도 아마도 아닌 유치원생인 나같은 수였다.
그 후 불계승을 부른 그 수가 바둑학원 원장님의 눈에 띄었고,
나는 그 수보다는 프로였던 유치원 원장님을 이겼다는 이유로 바둑학원 원장님의 손에 이끌려 어떤 기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 기원에서는 내가 두는 수마다 훈수가 이어졌고,
온갖 책들(수능으로 치면 동아전과 수준)을 섭렵하길 강요당하고, 한 수를 둘 때마다 무슨 책의 몇 페이지를 봐라 라는 구체적인 타박도 당했다.
나는 결국 프로를 준비하던 아마추어 선배를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3년 만에 경기 도중 돌을 진짜 던지고 기원을 나갔다.
그 불계는 경기를 잇지 않음과 동시에, 더이상 훈수에 응하지 않겠다는 나의 한 수였다.
부모님이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가니 영어학원을 다니라 한 영향도 있지만,
온전한 나의 돌을 두지 못하는 것에 큰 환멸감이 있었다.
10년이 훨씬 지났던 스무살의 어느 날, 유치원 원장님과 밥을 먹게 되었다.
그분은 모든 일 선에서 물러나 양주의 펜션에서 여사님과 지내시고 계셨다.
그 때의 수를 물었더니,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수는 아직도 기억나신다고 했다.
"아무 것도 강요받지 않은 순수한 수들을 보고 싶어서 너와 대국했다.
바둑 교육이나 책, 훈수도 없는 그런 순수한 돌의 위치를 말야.
결국엔 정말 좋았지.
열정이 느껴지는 수들이였어.
나같은 노련한 노땅들은 두지 않는 돌이였다.
넌 정말 신기한 아이였지.
작은 패는 그렇게 슬프다고 몸부림치던 넌 대국의 승리에 더 목말라했던 것 같았다.
그런 사람과 매일 대국을 했더니...
참.. 나도 웃겼던게 너와 같이 생각을 해버렸지.
지금 생각하면 그거도 좋은 추억의 한 수였어.
그 수 하나로 넌 날 기억했고,
처음으로 내 펜션에 온 제자가 되었지.
난 바둑에게 참 고맙단다.
전쟁을 오마주한 게임에 불과하지만,
너같은 학생이 날 기억하고 찾아오게 해주었잖니.
바둑은 내 추억의 상자이면서,
내 인생도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지."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멀리 떠나신
원장님....
다시 찾아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존재한다 안한다 설공은 답변 ㄴㄴ하셈뇨
-
1. 구점원삼각형 ABC와 그 삼각형의 수심 H가 있을 때변의 중점 3개, 수선의...
-
양의 실수 전체의 집합에서 정의된 두 연속 함수 f, g에 대하여 (가) 방정식...
-
질문해드림뇨 13
오르비살리기프로젝트
-
젊은것들이 벌써자?
-
잔다고 하는글 절 대 안잠 이건 연역적으로 증명됨뇨
-
4벙으로 푼거 기억나는데 가채엔 왜 3이라고 돼있을까 1번문젠데 한문제에 등급이왓다갔다 ㅠㅠ
-
누가 오르비에 독을 풀었는가...
-
재미있는 N제 풀기나 해야겠음뇨 드릴 딱 대 ㅋㅋ
-
전쟁은 어떨때 하냐는 글에 씨발년이 꼴받게 할때 라는 답이 생각나서 써본다
-
밤샘공부하실분 8
오늘의 과목은 오르비뻘글학임뇨
-
아 진짜 무서움 5
어둠의 세력 뭐야 심지어 조회 수 중복으로 안 올라가지 않음?
-
시간 왜 이롷게 지남뇨 자야겠음뇨
-
마킹실수 6
미치겟어요 지금 수학 19번 마킹할때 백의자리에 십의자리 쓰고 십의자리에 일의자리...
-
쓸데없는 걱정인걸 알지만서도...
-
부모님께 죄송함 4
항상 큰소리 땅땅 쳐놓고 공부 안하고 잠만처자고 돈 주라하는 내가 싫다
-
복권 3등 누군가한테 탈취당하니 재탈환할 때까지 복권 계속 돌림ㅋㅋㅋ
-
다들 안 자?
-
나가기싫다 10
내가왜간다고했을까
-
시발점 수강 1
재수생 미적분 78입니다 이번수능 6번실수랑 27 틀려서 78입니다. 공통 14까지...
-
재밌을 것 같음뇨
-
노벨상은 확정이뇨
-
ㅅㅃ뇨이
-
오늘부터 전 07임뇨 10
사시림뇨
-
lim (x->a) f(x) =L 가 존재할 때,
-
충격에 빠졌습니다
-
수능날 늦은 저녁, 지2 27점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은 나는.. 사실 그렇게...
-
시립대, 경희대, 건국대, 동국대, 홍익대, 아주대, 숭실대, 과기대, 인하대,...
-
근데 사실 저 나이 별로 안많고 나이 드립에 별로 안긁힘 6
그냥 재밌으라고 리액션하는거임 아 진짜라고
-
진짜임뇨........
-
수시 원서 접수 기간에 의치한약수 수시로 달달하게 쓰는 애들 위로해줘야함ㅋㅋㅋ 모고...
-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과는 상관없습니다
-
무서워서 글 지움....
-
서초 메가 0
자연계열 특화 전문이라고 되어있던데 문과 학생들에게는 많이 불편한가요? 수학은...
-
닌자고 1화부터 정주행 ㄱㄱ플라잉 스핀짓주
-
탈릅을 하면 먼저 가있던 오뿌이들이 마중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10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
합격자 발표도 나면.. 왜 다 가는지 몰랐는데 알 것 같기도 하고 대학생이 되면...
-
오야스미 3
네루!
-
한문제풀고 휴대폰보고 한문제풀고 휴대폰보고 한문제풀고 휴대폰보고 한문제풀고...
-
어릴 때만 재밌던 거구나.......
-
07이 어케 현역임뇨..........
-
하루종일 이거 생각하느라 정신병 걸릴거같은데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하나요? 최저는...
-
4개 다 달아야 끝에 04가 달리네 27학년도땐 04 06 07 08 이렇게...
-
안녕오르비 2
반갑다는인사
-
내년부턴 05가 삼수생 11
지구 버그 걸림뇨
-
룸메왔네 11
바이바이
-
너무 우울하다 가슴은 답답하고... 하 이놈의 우울증 어카냐 ㄹㅇ
-
이거 ㅈㄴ긁힘뇨...
오오
필력...
설대숲글 아닌가요?
설대숲에 없어요.
자작이신듯
근데 작성자분 등급 보니까 산화되셨....?
아닌데 제가 어디서 본거같아서 물어봤더니 설대숲출처래여
제가 쓴거라 잘 알아요.
이런 글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전 대략 8~9년 전 이세돌 사범님과 함께 묶였던 친선 대회기록이나
각종 대회 수상 등의 기록이 아직도 남아있고 (네이버 검색에도 아직 나옵니다)
바둑으로 체육특기생에 지정되어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당시 바둑 특기생들로 유명했던 안산슬기초등학교를 체육특기생으로 다녔으며
온라인에서는 타이젬 9단 아이디 세 개로 한,중,일, 대만의
거의 모든 프로기사들과 대국했었던 08년 한국기원 연구생 9조, 09년 6조 출신이며
안산 김기헌 사범님 문하에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함께 했던 분들 중 수 명은 현역 프로기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한 명은 입단과 거의 동시에 박카스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여 -우승 고근태 사범-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당시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한국 랭킹 2~30위권에 랭크된 박정근 사범입니다.
이 글이 대학 대나무숲에 올라왔는지 아닌지는 제가 알지 못하나 위 글은 100% 주작입니다. 정말로 목숨을 걸고 입단의 문턱을 밟아본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말조차 채 되지 않는 삼류 소설입니다.
장담컨대,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여섯살짜리 아이가 메시와 족구 대결을 해서 무실점으로 이기는게 본문의 내용보다 훨씬 더 개연성이 있을 뿐더러 차라리 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바둑에 대해서 모르는, 혹은 어린 시절 동네 조그마한 바둑학원 몇 번 왔다갔다 해 본 정도의 사람이 그냥 장난삼아 마구 끼적인 글임이 확실합니다.
작성자가 바둑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증거로 입단을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허황된 내용을 본문에서 수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란 오해 절대 없으시길 바랍니다. 혹여 바둑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 불안한 마음에 첨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