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쌤] 수능에서 국어 제시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1
안녕하시니까?
1교시 80분, 45문항에 인생을 건 생계형 수능 강사
원천쌤입니다.
오늘은 아주 뻔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너무 뻔해서 굳이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이지만 의외로 수험생들 중에서는 이 뻔한 사실을 체화하지 못하고 시험장에서 내적갈등으로 시간을 써버리는 학생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수험생이 수능 시험장에서 문학 제시문을 대했을 때,
어떤 전제를 가지고, 또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그 제시문이 현대문학이든, 고전문학이든, 시이든, 소설이든,
제대로 쓰여진, 훌륭한 작품이라고 간주하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
시험지 위에서 이 문학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쓰여진 작품인지를
‘시험장에서’, ‘수험생이’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황당하리만치 너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지요?
근데 이 뻔한 생각을 미처 못해서
많은 수험생들이 국어 공부를 하면서 헛된 시간을 보내거나
수능 시험으로서의 ‘국어’ 국어 과목 자체를 오해하거나
결정적으로는
‘시험장에서는’ 굳이 할 필요가 없거나, 해서는 안 되는 ‘잡’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명료한 선택지를 의심하거나, 황당한 선택지를 부여잡고 하염없는 사색을 하다가
시간은 무심하게도 흘러가는데, 집중력과 판단력은 떨어져서
원하는 대학 진학을
다음 년도 내지는 다음 생애로 미루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 2년 전에
당시에는 교대역 인근에 있었던 모 재수종합반에서 모 학생에게 받았던 질문입니다.
“쌤~ 오늘 IC수업(일종의 방송 수업)에서요~ 현대시를 했는데, 인강 쌤께서 ‘저무는 해’ 부분에 ‘저무는’에 밑줄을 치고는 이렇게 많이 써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보이에는 인강 선생님의 주관이 넘 개입된 것 같아요. 실제로 해가 저물어서 시인이 ‘그냥’ 저무는 해~ 라고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방금 네가 한 말은 ‘이건 시가 아니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란다. 시에서는 ‘그냥’ 지는 해가 없어. 해가 지든, 해가 뜨든, 새가 울든, 웃든 모두 다 정서를 구체적 이미지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란다.”
였죠.
우리는 간혹가다가 가장 중요한 원칙과 개념들을 너무 익숙하다보니 본인이 안다고 믿고 넘어가 버리고 공부를 하면서,또 시험을 치르면서 잊어버리곤 합니다.
시는
“정서를 드러내기 위한 언어 예술로서, 여기에 사용되는 언어, 즉 시어는 구체적 이미지를 환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한다”
좀더 간략히 말하면
“시는 정서를 구체적 이미지로 드러내는 언어 예술이다.”
초딩, 중딩도 다 알 만한 이 기본적인 시의 정의와 개념을 전제로 현대시 기출 분석을 하고, 체화하고, 끝내는 시험장에서도 이 개념을 토대로 사고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또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수능에 출제되는 시작품들은
“시는 정서를 구체적 이미지로 드러내는 언어 예술이다.”라는 기본적인 시의 정의와 개념에
아주 잘 부합하는 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장에서 ‘어떤 소재가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는 있다’라는 선택지는 무조건 맞는 말입니다.
만약 그 선택지가 틀렸다면
다음 둘 중의 하나인거죠.
1. 이것은 시가 아니다. 정서를 드러내는 문학예술이 아니다.
2. 시인이 제딴에는 시라고 썼겠지만 그 소재는 정서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아주 쓰레기 같은 글이다.
설마 위와 같은 이유로 선택지가 틀렸다고 판정되는 일이 있을까요?
평가원에서 수능 국어 시험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시를 감상할 수 있는가’이지
‘이것이 시라고 할 수 있는지? 제대로 된 시인지, 졸작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가’는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어떤 학생들은
‘정서가 드러나나?’
‘어떤 정서가 드러난다는 거지?’
‘나는 어떤 정서도 느껴지지 않는데, 뭘 느끼라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국어 문제는 감각으로 푸는 것’이라는 둥의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한번 더 연습해 볼까요?
아래는 평가원 기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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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천 리라 내 고향은 첩첩 봉우리 저쪽
돌아가고 싶은 마음 언제나 꿈 속이네.
한송정 곁에는 외로운 달빛이요
경포대 앞에는 한 떼의 바람이리.
모래밭의 백구는 모였다 흩어지고
물결 위의 어선들은 왔다갔다 하였네.
언제나 다시 임영(臨瀛)*의 길을 밟아
때때옷에 춤추며 슬하에서 옷 지을꼬.
- 사임당 신씨, <사친(思親)>
* 임영 : 강릉의 옛 이름.
(다)
님다히* 소식을 어떻게든 알자 하니
오늘도 거의로다 내일이나 사람 올까.
내 마음 둘 데 없다 어디로 가잔 말가.
잡거니 밀거니 높은 뫼에 올라가니
구름은 물론이고 안개는 무슨 일가.
산천이 어두운데 일월(日月)을 어찌 보며
지척(咫尺)을 모르는데 천리를 바라보랴.
차라리 물가에 가 뱃길이나 보려 하니
바람이야 물결이야 어수선히 되었구나.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걸렸는가.
강천(江天)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보니,
님다히 소식이 더욱 아득하구나.
모첨(茅簷)** 찬 자리에 밤중쯤 돌아오니
반벽(半壁) 청등(靑燈)은 누굴 위해 밝았는가.
오르며 내리며 헤매며 바장이니,
잠시 동안 역진(力盡)하여 풋잠을 잠깐 드니
정성이 지극하여 꿈에 님을 보니
옥(玉) 같은 몸이 반이나마 늙으셨네.
마음에 먹은 말씀 실컷 사뢰려니,
눈물이 쏟아지니 말씀인들 어찌하며,
정(情)을 못 다 하여 목조차 메이는데
방정맞은 닭소리에 잠은 어찌 깨었던가.
아아 허사(虛事)로다 이 님이 어디 간고.
잠결에 일어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가엾은 그림자가 날 따를 뿐이로다.
차라리 죽어져서 낙월(落月)이나 되어서
님 계신 창 안에 번드시 비추리라.
- 정철, <속미인곡(續美人曲)>
(가)와 (다)의 밑줄 친 시어에 대한 다음의 설명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가)의 ‘봉우리’와 (다)의 ‘높은 뫼’는 탈속적 공간이다.
② (가)의 ‘꿈’과 (다)의 ‘꿈’은 소망의 간절함을 담고 있다.
③(가)의 ‘달빛’과 (다)의 ‘낙월’은 화자의 심정이 투영된 사물이다.
④ (가)의 ‘바람’과 (다)의 ‘바람’은 화자의 내면과 관련이 있다.
⑤(가)의 ‘길’과 (다)의 ‘뱃길’은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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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선택지에서 무조건!!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는) 맞는 선택지는 몇 번일까요?
바로 ④이 되겠지요. ④번 선택지는 그냥 ‘위의 두 작품은 시이다’다른 말과 동어반복이니까요.
그런데도 많은 학생들은 ‘(다)의 바람은 간신배인데 화자의 내면은 충성심이니까 무관한 사이~~’이런 정말 내신을 위한, 내신에 의한 생각을 하면서 ④을 답이라고 골랐더랬죠.
슬픈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수능 제시문으로 문학을 대하는 기본 자세는
1. 이것이 제대로 된 문학작품이라고 ‘전제’할 것
2.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기본 개념을 토대로 사고할 것.
이 되겠네요.
다음에는
수능 제시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비문학편)을 올려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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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아예 못들어가여..?근데 학원에서 입실 안내 시간 문자를 하나도 안줬어요
잘 읽었습니다. 간혹간다가 - 간혹가다가 오타 있네요.
감사합니다.
ㅊㄱㅊㄱ
오르비에서 올리는 모든 국어쌤들 글 읽다보면 참 박광일쌤한테 잘 배운것 같다는 느낌이 듬.. 다 들어봤던 느낌이라 그런가
박광일쌤 제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인강 쌤이죠.
원천샘 이번에 송대에서 수업들었던 학생입니다!! 이글에 올리기에는 적절치 않은것같지만 꼭한번 감사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덕분에 오늘 기분좋게 성적표받을수 있었던가 같아요^^
축하해요~~ ^ ^
2년전 수업시간에 듣던 말을 오르비 글로 보니 새롭네요ㅋㅋ항상 수고하십니다!
넵~~ 감사합니다~~ ^ ^
선생님이 쓰신 글 하나하나 모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현역때도 재수 때도 국어 때문에 가장 고민이 많았었는데 재수학원 다니면서 원천샘 문학수업 들으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었어요. 샘이 글에서 쓰신 것처럼 시에 나타난 모든 장치는 글쓴이의 정서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인 걸 감안하고 선지들을 접근 하면 당연한 선지가 너무 많이 보이더라구요. 실제로 16 수능에서도 낯선 현대시 고전시가 보고 좀 당황했지만 내용이해가 안 되었어도 문제 푸는 데 전혀 지장이없었습니다. 15 수능 문학에서 꽤 많이 틀렸는데 올해 문학은 다 맞았네요 작년에 원천샘 수업 들었으면 재수 안했을거같네요~
넵~ 감사하고 축하드려요~~
제가 좋아하는 한자성어중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어요.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닭이 밖에서 쪼는 것이 같이 이루어져야지만
병아리가 알에서 깨고 나온다는 말인데요
선생과 학생이 모두 노력하는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가리키는 말이죠.
선생이 아무리 짖어도 학생들이 마음을 열지 않고, 또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를 낼 수가 없겠지요.
그런면에서는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일년을 노력해온 친구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선생은 많지 않을 것 같네요.
다시 하번
고 마 워 요 ^ ^
강대 야간반 수업 들었던 학생입니다. 물2 똥밟아서 내년에 또 뵙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물2 사태는 저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어요.
정말 한심하고.... 어이 없는 인간들이 이 나라에는 많이 있어요. 너무 많이.
ㅠ ㅠ
정시 지원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예를 들어 이육사의 광야에서 ' 가난한 노래의 씨는 화자의 a를 나타낸다' 라는 선지가 a때문에 틀릴순 있어도 화자의~를 나타낸다 때문에 틀릴순 없다... 라고 이해했다면 잘한건가요??
그러췌~~~
수능은 끝났지만 오르비에서 눈팅하는 재수생(끝난)으로서 원천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활동하는 공부게시판에 퍼가도 될까요? 글이 너무 좋은 거 같아서 ㅠ
링크도 첨부하겠습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입니다.
다만 원문에 대한 링크~는 부탁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