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것
새벽에 심심해서 써보는 글입니다. (물리학이나 화학을 특별히 비하하려는 목적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자연과학과 수학은 언뜻 보면 비슷해보이지만 근본부터 다른 영역이다. 자연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연의 현상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잘' 예측하는 것이지만, 수학은 수학자들이 직접 정의를 하고 그 정의에서 출발해서 논리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다. 수학의 절대 전제는 모든 논리와 정리의 시작이 되는 공리들이고, 현대 수학은 ZFC 공리계에 기반을 하고 있으며 수학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과학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수학은 자연을 기술하는 도구일 뿐이며, 오차가 매우 작은 경우 이를 무시하는 것이 일상이다. 이를테면 공학도에게 원주율은 3과 사실상 동일하며 sqrt(1 + sin x)는 1 + x/2와 동일하다. 그런 비엄밀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자연을 잘 설명하고 예측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에는 크게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천문, 그리고 생명과학이 있지만 그중 특히 물리와 화학이 자연과학의 특징을 잘 표방하고 있다. 물리학에서는 특히 수식적인 계산이 많이 사용되며, 앞서 언급한 공학 밈 역시 물리학의 수많은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단진자를 생각해보자. 우리 모두 단진자는 단진동을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럴까? 단진자가 단진동을 한다는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단진자의 진폭이 매우 작다, 공기저항이 없다, 실은 너무 가벼워서 그 질량을 무시해도 된다, 진자는 너무 작아서 점으로 생각해도 된다 등 수많은 가정이 들어가있다.
하지만 수학자의 관점에서 이를 근사 없이 큰 진폭에 대해 해결하려하면 타원적분이 나오게 되고, 결국 아래와 같은 급수식을 얻게 된다.
여기서 세타 제로가 충분히 작으면 대괄호 안의 식이 1로 다가가 흔히 아는 주기 공식이 나온다. 수학자라면 이 식을 보고 뿌듯해하겠지만, 모든 물리학도가 그렇지는 않다.
따라서 물리학에 사용되는 모든 수식과 계산에는 오차가 따르고 이때문에 물리실험에서 모든 측정요소의 확장불확도를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불확도는 물실이 학생들에게 주는 수많은 고통 중 상위권에 위치해있다)
(양자역학/물리화학 이외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느낌의) 화학은 반대로 계산량이 극히 적지만 논리가 없다. 항상 성립하는 규칙이나 법칙은 질량 보존 법칙이나 파울리 배타 원리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으며, 모든 규칙에 예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극성 물질은 물에 잘 녹는다고 하지만 극성이 낮음에도 다른 물질보다 물에 잘 녹는 쌍의 예시가 알려져 있다.
화학은 사실상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억지 학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게, 옥텟 규칙이나 이온성을 설명하는걸 보면 정말 답도 없다. 옥텟 규칙의 이유를 물어보면 "실험적으로 그렇더라" 라고 하고, 전자가 최외각 껍질에 8개가 들어갔을 때 가장 안정된 상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옥텟 규칙에 의해서 라고 답한다. 물론 예외도 차고 넘친다. 8개 뿐만 아니라 23개, 28개 등이 들어갔을 때 안정한 경우도 많으며, 이를 다 23전자규칙, 28전자규칙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다.
이온성을 설명하는 것은 더 끔찍하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이온의 전하량과 이온 사이 거리만을 이용해서 녹는점을 비교하는 것 같은데, 이는 이온 결정의 격자에너지(Lattice Energy)를 이용한 접근법이다. 하지만 당연히 예외가 차고 넘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게 Fajans' Rule이다. 이온들은 격자에너지를 이용한 녹는점 비교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딱딱한 당구공이 아니기에, 서로 가까워질수록 음이온의 전자구름이 양이온에 의해 찌그러지는 편극 현상이 일어나 강제적으로 공유성이 일부 생기게 되어, 이것이 이온성을 낮추는 것이다. 물론 공유성이 높아진다고 녹는점이 항상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 법칙의 목적은 격자에너지로 예측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때 "아무튼 편극에 의한거임" 이라고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때문에, 어떤 이온 결합 화합물 두 개를 주고 녹는점을 예측하라는 문제는 다른 조건이 없다면 대학교에서 절대로 출제할 수 없다. 고등학교에서는 격자에너지만을 가르치기에 격자에너지로 예측 가능한 것을 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론 자체가 결과를 설명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에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BCl3, BBr3. BI3는 모두 루이스산이기 때문에 BF3도 강한 루이스산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실험 결과는 매우 약한 산임을 보여준다. 또한 BF3의 루이스 구조를 그리라고 하면 형식전하가 없는 구조를 그리겠지만, 실제 구조는 이중결합이 한 개 있어서 공명적으로 4/3중 결합을 하는 구조다. 그럴듯한 설명을 하자면, F의 크기가 너무 작고 B의 2p오비탈의 에너지 준위와도 비슷해서 B의 2p오비탈이 F의 전자를 받는 것이다. 이때문에 형식전하를 가지는 BF4 - (Tetrafluoroborate)는 매우 안정하다.
화학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규칙을 만들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적당히 간단해보이는 규칙을 만들고 거기에 예외들을 덧붙인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규칙을 무시하지도, 얽매일 필요도 없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생기는 의문은 공리나 정의 자체에 관한 의문을 제외하면 모두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과학을 공부할 때는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인 것도 아니며, 몇 백년 전만 하더라도 태양계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현재의 이론도 현재까지의 지식과 기술로부터 유도해낸 합리적인 설명일 뿐이다. 가끔 자연과학을 수학처럼 접근하려고 하면서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 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수학도 연속체 가설처럼 일부 불완전한 부분도 있지만.. 물리나 화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고려대 논술이 부활했습니다. 정확히는 내년에 부활할 예정이지요. 2017학년도...
-
제곧내
-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하네용.... 출처는 종로학원 자료이고...
-
논술이 어려운 이유 33
논술 수업을 한두 번 듣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글쓰기가 생각보다...
-
검고생이 무슨 수시야? 할수있겠지만 그래도 6장을 버릴수는 없지 않겠는가? (본인은...
-
꼭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없더군요. 아무도 안 만들었더라구요. 그래서 결심했죠....
-
논술 말고, 이런 질문은 어때요? “국어는 재능인가, 노력인가?” 당연히 둘...
-
3월 4일, 저녁 6~10시 1학기 마지막반 개강합니다. 최강논술...
-
부산 동아대도 그렇고 부산대도 그렇고 부산애들 왤케 지역전형이 많냐? 49명중에...
-
경희대 한의예 논술이 올해부터 문이과 완전 분리선발합니다. 디오르비X최강논술...
-
경기도 교육청에서 의대 최저합격자 내신 깠네요. 전북대 의대 지역교과 1.92...
-
❤️ 추가모집대학 ❤️ 2월20일 10시 기준 1. 서울과학기술대 컴퓨터공학과 6명...
-
혹시나 해서요. 아직 등록기간이니 전찬으로 붙으신 분들, 등록금 환불 후 타 대학 등록 가능합니다. 11
다음은 2023학년도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 중 합격자등록 관련 페이지 캡쳐본입니다....
-
며칠 전 울동네 맘카페에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괴담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바로...
-
“논술, 일주일 공부하고 합격!” 심지어는, 단 하루만 준비해서 합격했다는 사례도...
-
정시에 내신을 반영했어.. 내신을 반영하지 말았어야해.. 이제 서(숨참고 3초~넘을...
-
늘 그래왔듯, 이나라 교육정책에 백년지대계 따위는 없답니다. 최강논술...
-
올해도 공개합니다. 21학년도부터 매년 대학별 대표 합격생을 공개해왔어요. 근데...
-
인문논술의 정점인 연세대! 그 중 최고인기학과인 경영학과! 올해도 역시 최초합격생이...
-
일단 허수의 유무가 점수산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데 경쟁률2.2ㄷ1이...
-
인문논술에서의 내신, 결론적으로 별로 안 중요해요. 심지어, 내신 좀 반영한다던...
-
안녕하세요, 크럭스 김도규입니다. 오늘은 이전에 예고드렸던 표본분석에 관련하여 글을...
-
신입생 기준 중도탈락률 홍익대가 12.2%로 가장 높아.. 11
서울 주요 대학별로는 홍익대가 4.1%로 중도탈락률이 가장 높았고... 대부분...
-
반도체학과에 대해 문의주시는 분들이 많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본 글은 "서강대...
-
[필독] 입시 전문가들이 예상한 입시 유의점 6가지 0
안녕하세요. 나무 아카데미입니다. 12월 9일 금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학능력시험...
-
인문논술 수능최저, 전반적으로 소폭 완화입니다. 구체적인 수능최저와, 실질경쟁률까지...
-
[오르비 강성식]강성식 소장과 함께하는 2023수능점수와 2022수능점수 비교 2
나의 점수로 갈 수 있는 최대한의 대학은 어디일까요? 안녕하세요 탑미네르바 컨설팅...
-
메디컬계열 표본분석 칼럼 3편 - 표본의 상대적 위치 6
안녕하세요. 피오르 컨설팅의 종냥입니다. 이번에 제가 올릴 글은, 아마 이번 칼럼...
-
안녕하세요. 피오르 컨설팅에서 메디컬 팀장을 맡고 있는, 종냥이라고 합니다. 오늘...
-
2023학년도 정시 전형 - 충남대, 충북대, 강원대 0
안녕하세요. 나무 아카데미입니다. 수능이 어제 끝난 거 같은데 벌써 정시 원서 접수...
-
2023학년도 정시 전형 -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 0
안녕하세요. 나무 아카데미입니다. 수능이 어제 끝난 거 같은데 벌써 정시 원서 접수...
-
2023학년도 대수능 Crux Table (국어/수학) [N2211] 13
* 자료 공유 시에는 반드시 출처를 남기셔야 합니다. * 본 글의 작성자는...
-
2023학년도 정시 전형 - 국군간호사관학교, 육사, 해사, 공사 0
안녕하세요. 나무 아카데미입니다. 수능이 어제 끝난 거 같은데 벌써 정시 원서 접수...
-
[오르비 강성식]강성식 소장과 함께하는 2023수능실채점 비교표_2023VS2022 4
안녕하세요 오르비 강성식 입시연구소장입니다. 나의 점수로 갈 수 있는 최대한의...
-
2023학년도 정시 전형 - 한국항공대, 한국교통대, 서울여자간호대, 경찰대 0
안녕하세요. 나무 아카데미입니다. 수능이 어제 끝난 거 같은데 벌써 정시 원서 접수...
-
[오르비 강성식]강성식 소장과 함께하는 2023정시 교차지원은 어디까지 갈까요? 1
안녕하세요 오르비 탑미네르바 컨설팅 강성식 입시연구소장입니다. 나의 점수로 갈 수...
-
2023학년도 정시 전형 - 서울과기대, 한국기술교육대, 한국공학대(전 한국산업기술대) 0
안녕하세요. 나무 아카데미입니다. 수능이 어제 끝난 거 같은데 벌써 정시 원서 접수...
-
안녕하세요. 나무 아카데미입니다. 수능이 어제 끝난 거 같은데 벌써 정시 원서 접수...
-
12월 31일(토) 저녁 6시. 디오르비 『The LIVE』 개강 합니다. 최강논술...
-
안녕하세요 크럭스팀 [Crux]금산조입니다. 어떤 모집단위의 컷을 예상할 때에는...
-
[오르비 강성식] 강성식 소장과 함께하는 2023가채점 분석과 2023정시를 시작하며 3
안녕하세요!!! 탑미네르바 컨설팅 오르비 강성식 입시연구소장 인사드립니다. 1....
-
성대 / 경희대 / 연대 + 여러 대학이 지난 15년 간 출제해 온 기출문제 대응쌍...
-
[피오르 컨설팅] 23학년도 정시컨설팅 예약 안내 33
안녕하십니까. 피오르(FJORD) 컨설팅입니다. 23학년도 컨설팅 신청 방법과...
-
2023 수능 국수영 정답 및 기출문제(링크 및 이미지) 0
모두 고생많으셨습니다. 성적표는 12월 9일날 나옵니다....
-
2023부터 서울대 정시에서 내신이 정성평가를 통해 반영됩니다. 정시 일반전형은...
-
지난 1일, 연세대 논술시험일 스케치입니다. 자세한 건 영상으로... 최강논술...
-
내일 봅시다. 연세대 정문에서! 최강논술 임호일Pro입니다. 올해도 갑니다. 매년...
-
홍익대 논술 최종경쟁률 25:1 홍대는 최저 충족한 실질경쟁률을 공개하지 않아요....
-
연세대 논술 최종경쟁률 38:1 70:1(재작년)과 48:1(작년)에 비해 많이...
-
현직교사가 만든 2023학년도 대입정보시스템(v22.09.14.) 5
현직교사가 만든 2023학년도 대입정보시스템 (v22.09.14.) 수시원서...
좋은글 항상 감사합니다
같은 고2인데 경외롭네요.
몇 개월 전에 맥스웰 방정식 공부하면서 질문했던 내용이...
자기장의 다이버전스 식에 대해 탐구하던 중 이에 대해 담임선생님께 질문했는데, 그냥 모든 관측 결과가 그 식을 지지하기 때문에 (관측되지 않은 예외가 이를테면 자기 홀극) 식을 사용한다라고 말씀하셔서 개인적으로 큰 충격이었는데...
포인트는 다르지만 그 일이 다시 생각나네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