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nnn [957136] · MS 2020 · 쪽지

2022-08-09 16: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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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진짜 진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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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입니다. 똑바로 읽어도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하지만 내가 이상한 변호사라고 불리는 것은 자폐가 있거나 행동이 어눌해서가 아닙니다. 자폐아라고 하지만 나는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니까요. 한번 보기만 해도 모두 기억하는데 어떻게 일반인들이 저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중간고사든 변호사 시험이든 제게는 오픈 북이나 다름없어요. 게다가 저는 무척 창의적인 변호사에요. 신참인데도 불구하고 경력이 십 년이 넘는 베테랑 변호사들마저도 간과하는 쟁점을 파악하고 즉흥적으로 법정에서 변론에 나서도 훌륭하게 해내는 슈퍼스타입니다. 필드 위에 손흥민이 있다면 법정에는 저 우영우가 있는 셈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무척이나 모순적인 존재니까요. 아마 여러분들도 느끼고 있을 거에요. 제 능력은 로스쿨에서나 변호사 시험을 치르는데 대단히 유리해요. 이건 장애가 아니라 사실상 초능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어쩌면 서울법대 창설 이래 최고의 천재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약간의 핸디캡이 있습니다. 펭수를 좋아하던 김정훈 씨나 지적 장애를 가진 신혜영 씨에 비하면 아주아주 사소한 장애이지요. 게다가 사회생활도 잘하고 직장에서는 최고의 능력자입니다. 또 얼굴까지 아주 예쁜 변호사입니다. 그래서 사내연애도 합니다. 회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직원이랑요. 심지어 사실 나는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이지요. 천재도 아니고 로스쿨도 못 가고 회장님 자식도 아니고 사내 훈남과 연애도 못하는 여러분들은 정말로 이런 저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십니까? 그것 참 신기한 일이네요. 아니 이 경우 이상하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존재뿐만이 아닙니다. 제 말과 행동에도 모순이 있습니다. 저는 소덕동을 관통하는 도로의 공사를 막아달라는 사건을 맡아 승소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덕동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팽나무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서로 돕고 웃는 이웃들이 어울려 지내는 아름다운 동네이지요. 그런 소덕동을 개발하겠다니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공사를 좌초시켰어요. 아주 뿌듯한 일입니다. 이제 신도시 거주자들은 교통체증에 시달릴 것이고 이미 몇 년간 진행된 공사를 정지시킨 덕에 세금도 낭비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소덕동에 거주하는 총 2513가구 중 과반이 넘는 1557가구가 개발사업에 찬성하며 보상금을 받기를 원했지만 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소덕동을 대표해서 이 일을 막았습니다. 아, 모르셨습니까? 저는 신도시에 어마어마한 땅과 건물을 가지신 최한수 이장님의 변호사입니다. 법무법인 한바다에 수임료를 내는 건 지역 유지이신 이장님이지 저 소덕동 주민들이 아닙니다. 아마 저분들은 길도 좁고 교통도 열악하고 인프라도 부족한 이 시골 동네에서 평생 사시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깡촌은 계속해서 깡촌으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물론 저라면 여기에 안 살겠지만요. 여기엔 김밥집 배민도 안되고 고래인형 까페도 없어요. 그렇게 저와 부자 이장님은 소덕동의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겠다며 어리석게도 토지보상금을 바랬던 저 1557가구의 주민들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내 사정이 되면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살던 강화도가 개발되어 친구 아버지가 보상금을 받았는데 형들이 모두 가져갔다고 합니다. 모처럼 대박이 터졌는데 그 행운을 자기들이 챙기려 하다니.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는 기지를 발휘해 그 돈을 되찾아옵니다. 네 친형들을 법정에 세우고 함정에 몰아넣어야 할 정도로 돈은 중요해요. 이건 내 돈이니까요. 돈은 매우 중요해요. 우애를 지키겠다고 돈을 포기하는건 어리숙한 바보예요. 이제 동동삼씨는 그렇게 받은 보상금으로 내 친구 동그라미에게 서울 역세권에 번듯한 신축 아파트도 사주고 비싼 도시의 물가도 걱정하지 않도록 생활비도 넉넉하게 대줄 수 있어요. 음? 지금 1557가구의 소덕동 주민들 이야기를 왜 꺼내는 겁니까? 당신은 지금 본 사건과 전혀 연관성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말 못 들어 보셨습니까?? 뒷통수 맞고 싶습니까?  
어린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는 개똥철학을 설파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참. 기억나십니까? 제가 첫 의뢰를 수임 받았을 때 의뢰인은 저를 못 미더워 했어요. 하지만 정명석 변호사님께서 이 몸이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라는 것을 알려줬어요. 그제서야 의뢰인은 저에게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궁지에 몰릴 때면 나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이라는 타이틀을 곧잘 써먹었습니다. 이처럼 간판의 힘은 대단합니다. 보기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 주거든요. 나이키나 애플이 브랜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학부 친구들과 로스쿨 동기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와 로스쿨에 왔어요. 물론 그렇게 공부해 봤자 읽기만 하면 다 기억하는 저를 이길순 없었지만요. 



어린이는 놀아야 합니다. 하지만 맨날 노는 어린이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어요. 네 그렇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될 수 없어요.(어린이 해방군 여러분들은 저 같은 천재가 아니잖아요?) 의사도 될 수 없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는 건 어려워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동네에 집을 사는 것도 힘들어요. 인스타에 멋진 사진들을 올리는 삶을 살 수도 없어요. 물론 그렇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배우들은 촬영이 끝나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로 돌아가요. 이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해도 사기 힘든 집입니다. 작가들은 "어린이는 놀아야 합니다"라는 대사를 쓰고 작업하던 노트북을 덮자마자 나서 지인들에게 전문직들과 소개팅을 좀 주선해 달라고 카톡을 보냅니다. 이왕이면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라면 좋겠어요. 물론 답장은 없어요. 시청자 여러분들도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나, 이상한 우영우가 변호사라서에요. 이상한 고졸경리 우영우. 이상한 쿠팡맨 우영우. 이상한 백수 우영우. 이런 드라마였다면 벌써 망했어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주로 세속적 욕망을 자극해요. 그걸 아주 잘합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근데 우리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우영우라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수퍼맨을 창조해놓고 거기에 장애를 한 스푼 얹은 뒤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요. 그리고 일반 장애인들이 겪지도 않을 상황을 가정해서 사회가 부조리하다며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요. 형들을 고소해서 보상금을 타내는 이야기를 하다, 돈 많은 이장 아저씨가 보상금을 받고 싶다는 동네 주민들의 의사를 묵살하는 이야기를 미화합니다. 나보고 서울대 로스쿨을 나온 천재라고 동네방네 광고할 때는 언제고, 또 곧장 자식을 서울대 보내려고 애쓰는 부모님들을 악당으로 그려요. 갑자기 판자촌이 아름답다며 재개발을 막던 박원순 아저씨나 특목고를 없애자면서 뒤로 자기 아들 둘은 특목고에 보낸 조희연 아저씨 냄새가 나요. 킁킁. 제 이름은 우영우,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지만 드라마는 그렇지 않아요. 앞에서 볼 땐 재미었는데 뒤에서 보니 제작자의 욕망과 컴플렉스를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덮어 사회에 일침을 가하겠다는 의도로 범벅되어 있어요. 정말 이상해요. 아. 그래서 제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인가 봅니다.  




***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 딴죽을 걸자면 한도 끝도 없지. 게다가 사회경험도 적고 이해도 얕은 작가들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철학적 빈곤이 뭐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니까. 게다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다큐가 아니다. 하지만 오락영화와 드라마를 양산하는 작가와 감독들이 자꾸 그 선을 넘나드는 시대에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만 오버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나도 그 선을 넘어 다큐라는 돋보기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들여다보련다. 
서울대 로스쿨, 젊은 직원들조차도 수 억의 연봉을 받는 로펌, 그리고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설정까지 이 드라마는 대중들의 세속적 욕망을 한껏 자극하는 장치들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매 화에서 작가는 그 세속적 욕망을 부정하는 사건들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지 않을까. 토지보상은 드라마에서 뜻하지 않은 횡재를 의미하는 클리셰나 다름없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 사건이 두 번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그 차이는 바로 관찰자의 시점에 있다. 삼형제의 난에서는 작가는 보상의 수령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고 소덕동 이야기에서는 보상금 수령자가 내가 아닌 제3자니까. 우리의 불편함은 입장에 따른 작가의 태도가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돈을 욕망하는 것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동그라미와 아버지의 입을 빌려 그 욕망을 표출한다. 하지만 수령자가 내가 아닌 타인이 되니 작가는 갑자기 도덕이라는 몽둥이를 꺼내 그들의 욕망을 매섭게 후려치기 시작한다. 마치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더 나아가 작가는 소덕동을 마치 인디언 보호구역이나 민속촌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묘사한다. 그곳에서 소덕동 주민들은 잘 꾸며진 어항의 관상용 물고기들처럼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 보기 좋도록 정겨운 시골 마을을 연출한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던가. 인디언들도, 또 구한말의 오지 주민들도 지하철과 24시간 편의점, 영어유치원 그리고 신선배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반길 것이다. 소덕동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몰락하는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주민들에게 그런 편의는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람들의 삶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치 주말에 차를 몰고 용인 민속촌을 방문한 관람객의 시선으로 #대박핫플 #소덕동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언제 다시 들릴지 모르는 그 관광지를 보존하기 위해 주민들의 미래를 나락으로 보내는 일조차 서슴지 않는다. 그런 시각은 오로지 자신의 옛 추억을 재현하기 위해 오징어 게임을 열어 455명의 지원자들을 폭력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오일남의 정서와도 이어져있다.  

 
작가의 모순적 시각은 드라마가 설파하는 교육관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로스쿨과 고학력 고소득자들인 변호사를 소재로 삼아 시청률을 올리면서도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과 경쟁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다. 나 역시 경쟁적인 한국 사회가 바람직한지 의문이지만, 이런 과열된 경쟁은 대중들이 가진 욕망의 결과일 뿐이지 결코 원인이 아니다. 물론 내신 5등급인 학생이 2년제 전문학교를 졸업해 소덕동 인근의 빌라에서 살며 중소기업에 다녀도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밋밋한 스토리는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다. 인기 드라마에는 마치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처럼 대중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꿈틀대야 하는 법. 그래서 작가는 스토리에 서울대 로스쿨과 고소득자들이 모인 로펌, 그리고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을 담았다. 그것들을 욕망하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으랴. 우리 모두는 같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쟁이 발생한다. 이를 부정하려면 욕망 또한 부정해야 하는데 제작자와 작가는 대중들의 그 욕망에 기생하면서도 그 결과물은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고 솔직한 우영우와는 달리 드라마 너머로 보이는 작가가 앞과 뒤가 무척이나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권위주의의 시절, 정부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창작물에 정부가 원하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넣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들이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무너뜨리면서 등장하자 되려 설득력은 반감이 되고 시청자들은 종종 그 메시지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곤 했다. 오늘날 이 이념적 강압은 진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관객들의 눈은 마치 쫑긋 세운 강아지의 귀와 같아서 작가가 완력을 쓰는 순간 그 의도를 기민하게 알아채곤 한다. 작가나 감독 혹은 배우가 이념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그대들에게도 그럴 자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평균적인 대중들보다도 교육 기간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사람들이 따끔하게 일침을 놓겠다며 송곳과 대본을 들고 사회의 이곳저곳을 푹푹 찔러대는 것은 정의감이 아닌 도덕적 우월감을 내보이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욕망이 다른 욕망을 저열하다며 훈계하는 웃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작가들은 이제라도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앉아 훌륭한 오락 TV 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드라마는 정말로 잘 만든 오락 드라마니까.


출처: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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