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나의 심판대인가
타인은 나의 심판대인가
人間(인간)이라는 한자어를 뜻풀이하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타인과 관계 맺기를 피할 수 없다.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초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타인을 배제하고는 성취를 이룰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개인의 삶은 상당부분 타인에게 의존한다.
그리고 나에게 의존하는 타인에게 책임감을 부여받는다.
또한 사랑, 우정등의 추상적 가치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반응을 인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기에 행복과 불행의의 척도가
타인에게 나오는 경우가 많고, 나는 이러한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한다. 타인이 나의 심판대인 삶은 우울하다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남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삶이나,
기존의 사회체계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삶은
생명력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역으로 질문하면 막막해진다.
‘그래서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나?
혹은 사회가 옹호하는 가치들을 거부하는 돈키호테적 삶은 얼마나 실현가능성이 있을까?’
글을 쓰는 입장에서 자꾸 모르겠다고 하면 멋지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 글은 독자들에게 답을 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다수를 향한 나의 고민상담 일지도 모르겠다.
경계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위의 질문에 편하게 대답하자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써
‘적당히‘ 타인을 의식하고, ’적당히‘ 사회가 시키는대로 따라줘야 한다.
하지만 ’적당히’라는 말은 무엇인가? 정도에 알맞게. 엇비슷하게 요령있게. 라는
사전적 정의가 ‘타인은 나의 심판대인가’라는 의문에 기준이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수험생커뮤니티에서 받았던 하나의 쪽지가 기억난다.
그 쪽지는 철저하게 비(非)생산적인 의문을 던졌다.
경쟁의 관점에서 보자면 거의 반(反)생산적인 의문.
그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가져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문보다는 그럼에도, 그럼에도 상당한 시사점이 있기에 무대위에 올리고 싶다.
그의 이야기가 가십거리로 몰락하지 않길 바라면서.
침묵을 깨던. 내 자신의 모습도 발견한 한 울림?
저는 이제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남학생이에요 ㅎ
원래 대학 다니다가 만족하지 못해서 반수해서 이제 나이가 22살 인데요 ㅎ
사실, 대학 들어오기 전까지 학창 생활때는 정말 공부가 전부인줄 알고
그리고 공부 말고 다른건 생각도 안하고 공부만 했거든요
그렇게 공부만 하다가 원하는 대학에 왔는데, 대학에 오니까 공부 말고 다른 것들이 보이더라구요..
저는 정말 나쁘지만 남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낄때 행복감을 느끼는것 같아요..
사실 공부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남들보다 잘한다는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라이벌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공부 했던거 같아요.. 제가 뭘 하고 싶고 원해서 한 것이 아니구..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학교에 들어왔는데
학교 들어오니까, 같은 학교 내의 사람들은 저랑 학벌, 공부는 똑같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 하더라구요.. 저보다 잘생긴 사람들,
저희 집보다 훨씬 잘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한테 열등감이 들어요..
남들이랑 비교할때 겉으로 드러나는게 외모,집안,학벌 이정도가 있을 수 있는데
외모랑 집안은 제가 노력한다고 바꿀 수도 있는게 아니니까 더 열등감도 들고 힘든것 같아요..
저도 사실 외모나 집안이 그렇게 안 좋은편도 아닌데 저보다 잘생기거나 잘사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럽고 그래요..
이게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고민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라 그럴 수 있어 하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진짜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보면 항상 저랑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러다보니 저보다 멋진 사람들도 정말 많고 저는 아무거도 아니라는 생각,
제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우울하고 힘들고 그래요 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게 공부 이런거면 노력으로 되지만
외모 집안은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ㅠ
저도 제가 너무 욕심이 많은걸 알고, 남들이랑 비교에서 불행이 시작 된다는거도
잘 알아서 안 그러려고 해봤지만, 제 성격이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어서 그런지
고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ㅠ 뭔가 아 나만 행복하면되지!
남들이랑 비교하지말자! 이러면 내가 못나서 어쩔 수 없이
현실에서 도망,회피 하는거 같아서 더 자존심 상하구요 ㅠ
어떻게 해야 좀 어린 이런 저의 마음가짐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까요?ㅠ
전 정말 너무 아직 어리고 철이 없는 것 같네요 ㅠ
이유 모를 방황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자기혁명의 프롤로그에서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생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던 박경철씨에게 지방의 한 고등학생은 말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도 제가 좋은 대학을 가거나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말대로 살면 희망이 있을까요?”
박경철씨는 이 의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의 선연한 눈빛, 한탄 섞인 자조, 스스로가 사회의 변방에 불과하다는 체념에,
‘아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이고 너만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라는
통속적인 힐링을 하기에 그는 너무나 분석적이고 냉철했다.
세상에는 필요이상의 제약조건이 있고 어린 시절의 이상(Ideal)은 추억으로 남기 쉽다. 는
것을 삶을 통해서 깨달은 40대 후반의 지적인 시니어였다.
물론 저 쪽지를 받은 나는 아무 말도 못해주지는 않았다.
비대칭적이었던 박경철씨와 고등학생의 관계와는 달리,
나는 쪽지의 주인공과 학번도 같고 나이나 한 살 많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주인공보다 수능성적도 낮았다.
타인들 앞에 선 것도 아닌 개인적인 쪽지교환이었다.
완전한 대칭상황이었다. 답변해 주었다.
물론 나는 그에게 쪽지를 보내는 것인지, 나에게 쪽지를 보내는 것인지 모호했다.
나는 그에게 비교우위로 행복이나 불행을 느끼는 것은
소금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는 것과 같다는 정형화된 답변과,
일단 ‘살아보라’라는 약간은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I may be wrong의 자세를 가지고, 고독도 느껴보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호의도 가져보고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낀다면 혼자 여행도 다녀보고,
책도 많이 읽어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길 바란다고 했다.
데미안에 등장한 명언도 전해주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한다. 고.
고맙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중요한 고민 앞에서는 타인의 영향력을 제한적하고,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타인의 시선을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으로 삼던 주인공은
외면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다. 너무 높은 비교기준을 삼았기 때문에 지쳤을 뿐이다.
최고는 아니지만 전혀 지장 받을 이유 없는 외모나 집안.
이십대 초반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득권인 학벌. 하지만 별로 행복하지 않은 삶.
차라리 선연한 눈빛의 고등학생처럼 탓할 대상이 있었다면
그 대상을 원망하며 위안을 삼으리라.
하지만 그에게는 그다지 탓할 대상이 없었다.
역설적으로 탓 할 대상이 없다는 것은 개인을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우울증은 외부적으로는 큰 문제 상황에 닥친 사람에게 발생하는 빈도수보다,
외부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내면이 공허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빈도수가 더 많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결국, 문제의 원인이 자기 자신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게임이론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기본권도 침해 할 수 있는 절대군주를 옹호한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자연 상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만인은 만인에 대한 투쟁’ 또는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라고.
이렇듯 홉스는 경험과 사고실험을 통해 인간은 아무 규율이나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면
세상은 혼란으로 빠질 것이라 예측했다.
그리고 사회계약설 도입을 주장했다.
때로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절대군주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래서 국가를 통해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더라도 존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의 사회상도 군주의 특성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국가와 사회계약에 의해 세상이 유지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홉스 이후 사백년. 사회는 비약적인 생산량과 첨단문물의 발전을 이루었다.
사회계약의 관점에서 공산주의는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왕좌를 차지했다.
사회는 효율적으로 변했지만, 인간성 또한 ‘그만큼‘ 진보했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물론, 인간성이 진보한다는 개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인간성이 지금보다 진보해야하는가? 라는 당위에 대한 물음도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운 분야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와 국가가
현시대를 Zero-Sum(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정하여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
그 손해와 이득의 총합은 0)
경쟁사회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
솔직해지자.
내가 현시대를 Zero-Sum경쟁사회로 규정한다면
나는 내 논리를 펴기위해 비약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전체적으로는 Plus-Sum인 사회에 살고 있다.
조금씩 진보해 나아가니까.
그리고 그 분야 분야마다 Plus-Sum경쟁, Zero-Sum경쟁, Minus-Sum경쟁이 있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가 접하는 경쟁의 가장 많은 빈도수는 Zero-Sum경쟁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자가 아니라 구체적 통계치를 제시해주지 못하여 아쉽지만,
크게 억지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하튼 우리사회가 어떤 Sum 사회이든지
만인이 만인에 대한 게임이론상태(경쟁 주체가 상대편의 대처행동을
고려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행동. 내가 같은 행동을 할지라도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과 그것이 나를 휘두른다는 것은 독립적인 문제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경쟁이라는 속성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내면이 경쟁으로 색칠된 현존재들은 타인을 행복과 불행의 기준으로 삼을
이론적 토대가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제시한 주인공처럼 이겨도 상처.
박경철씨가 제시한 선연한 고등학생처럼 져도 상처를 받는다면,
이는 필히 기괴한 상황이다.
사회제도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항상 이를 탓하고만 있을 수는, 타인만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절반이상은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성숙한 자세이다.
타인이 나의 심판대가 되는 세상.
이러한 심판앞에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획득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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