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는 의대를 간 국어치 송모 학생을 추억하며
- 자신을 국어치라 여기는 학생들을 격려하려 쓴 글입니다.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다 보면 국어 과목이 입시에서 뜻밖의 복병이 되었다고 곤란을 호소하는 학생들을 뜻밖에 많이 보게 됩니다.
2년 전에 만난 송모군도 그러한 학생이었지요.
이 친구는 큰 꿈을 품고 과고를 진학했으나 입학 이후에 자신감을 잃었다 합니다.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참 많은데 놀라고 그 사람들과 경쟁해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다고 단념해 버렸답니다. 그냥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이 무난하게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서 의대를 가기로 결정하고 고2때 자퇴를 합니다.
수능 과목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친구는 특히 영어와 국어를 힘들어 했는데, 영어는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국어는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제가 근무하는 학원에 왔고 저랑 만나게 됩니다. 악연(?)이 시작된 것이죠.
이 친구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요, 수업 시간 중이나 수업 시간 후에 질문을 하면 제가 멘붕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인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당시 EBS에 수록된 백석 시인의 ‘수라’라는 시를 자신이 이해한 방식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백석의 ‘수라’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익히 아시는 분이면 패스~
---------------------------------------------------------------------------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 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수라(修羅)>
----------------------------------------------------------------
방 안에서 거미 새끼 한 마리를 본 화자는 무심코 그 거미 새끼를 문 밖에 버린 후. 곧 큰 거미를 발견하고는 자신이 방금 버린 거미의 어미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거미 가족을 이산 가족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슬퍼하며 큰 거미도 밖으로 내보내지요. 새끼 거미를 찾아가라고요. 잠시 후 이번에는 정말 ‘갓 태어난 듯한 채 서지도 못하는 무척 작은 새끼 거미’를 보고 자신이 이 거미를 형제와 어미와 헤어지게 만들었다고 더욱 슬퍼집니다. 이 시의 제목이 수라(‘아수라’의 다른 표현, ‘하늘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사는 세계')인 이유가 짐작이 가지요.
이 친구는 이 시를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자기가 사는 아파트 자기 방에 하룻밤에 거미같은 벌레가 3마리가 나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벌레 나오는 집에서 사는 고통을 호소한 시가 아니냐? 왜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냐?라는 것이 이 친구의 주장이었죠.
백석이 어떤 시를 썼으며, 어떤 삶을 살았다를 구구절절하게 들먹이는 것은,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끼리라면 몰라도 수능 과목으로 국어 문제에 접근하는 학생, 특히 이과 학생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는 방법이 아니겠지요?
결국 시란 무엇일까? 교과 과정에서 시를 가르치는 이유는 뭘까? 그렇다면 수능에 나오는 시들을 접근하는 기본적인 관점이 뭔가?를 이야기하고 다음의 말을 꼬옥 기억해달라는 당부하는 것으로 답을 했습니다.
“자연물이 부정적인 상황이 강조되면 그 자연물은 화자의 대응물이다, 곧 화자 자신이다.”
수업이 끝나고 질문이 있는 학생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있을 때, 우리 송군 뒤에 줄을 서는 학생은 포기하고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쟤는 쉬는 시간 내에 질문을 끝낼 것 같지 않아요.’고 말이지요.
사실 저도 이 친구를 보면 때로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특히 제 수업 교재 외에 몇 권씩 책에다 포스트 잇을 덕지덕지 붙여서 서 있는 걸 보면 ‘이 녀석에게 시달리다가 바로 다음 수업 들어 가겠구나’ 뭐 이런 생각도 솔직히 들고요.
그러나
나에게는 일주일에 몇 십분(-..-)이 괴롭거나 난감하겠지만, 본인에게는 가장 큰 인생의 고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열심히 하는 학생을 외면하는 선생을 없을 겁니다. 또 내가 납득 못시키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었구요.
이 친구는 학원이 종강하는 그 날까지 꾸준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했구요, 점점 황당한 질문은 줄어들더군요.
그리고 수능 다음날 언어 다 맞았다고 문자를 보내주었네요. 어찌나 신기하고(?) 기쁘던지.
사실 수학은 잘 하는데 국어를 못하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수능 국어 문제를 푸는 것은 시를 쓰는 것보다는 수학 문제를 푸는 쪽에 가까운 사고 활동이니까요.
제대로 관점을 잡고 다가서면 노력하면 수학 공부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노력으로 정복이 가능한 과목이 국어라는 게 국어 선생으로서 믿음입니다. ^^
(흉부외과를 전공하면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끝내 의대에 간 송군!
의대에서도 그 열정으로 항상 열공하기를~)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그렇구나 대충 일주일 후에 오르비는 울음바다가 되겠구나 1
한탄글 및 누구누구를 저격하는 글(컷 이상하게 추정했다고) 그리고 몇 명은 웃으면서 혼란하겠다
-
토요일에 한양대 오후1 치고 온 현역 뉴비입니다 매우 쫄리네요
-
은근 최신 기출이 많아서 불안하네요
-
전 이번에 지구과학 + 사회문화 본 혼종입니다@.@ 한양대, 경희대처럼 과탐 가산점...
-
딱최저임금만큼돈버는중
-
담배를 후 3
방이 담배로 가득
-
Was interesting?
-
근데 과탐이 개쫄려 백분위 나락갈까봐
-
시대 강기원 선생님과 김성호 선생님의 미적 수업 스타일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
이제 거의 일주일 남았네...
-
요즘처럼 교육과정 개편으로 작업량이 많을 때... 쫙 복붙하고 싶은 충동이 자주...
-
님들 땅에 떨어진 거 몇 초 안에 주워먹는 게 ㄱㅊ음? 20
전 그냥 길바닥에 떨어져도 10초 안에 주우면 ㄱㅊ다고 생각함
-
망했뇨
-
ㄷㄷㄷ
-
26뉴런 다 올라왔을때인가 올라오기 시작할때인가
-
공부끝 0
공부안함
-
숙박비 얼마임?
-
왜냐면 잡은 적이 없음뇨 사실 여친이 없음뇨 사실 과제하기 싫은데 똥글쓰고 있음뇨...
-
시험지에는 무조건 1번으로 표기했음 근데 omr보고 쓴 가채점표에는 3이라 써져있음...
-
학교선생님이나 학원선생님들이 모두 고2 모고 기준 80점 이하면 무조건...
-
https://arca.live/b/namuhotnow/122275397?p=1...
-
닭찌 2개랑 김치찌개랑 밥 캬
-
국어3 수학3뜸뇨.. 과탐 화지 할건데 하루에 국수영탐탐 시간분배 어케해야될까요??...
-
답공유 ㄱ
-
국어 그읽그풀vs구조독해(김도훈T)...
-
트럼프가 고립주의적으로 행동하는이유가뭐임? 중국에 관세폭탄+캐나다 멕시코에 관세25%먹이던데..
-
고3,엔수되바라 지금시기에 존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있을뿐이다. . .
-
ㅈㄱㄴ 카드면 그이상 눌러줘용
-
제작년 수능(컷 높고 쉬움, 올해랑 비슷) 환산점수 컷 낮음 작년 수능(컷 낮고,...
-
양치하고 달달한 거 먹으면 맛 이상하길래 건빵 먹었는데 이것도 이상하네
-
66일만의 음주 2
는 꼴랑 청하 한잔 이것도 겨우 허락받아서 마심 수술부위 다 나을때까진 먹지말라고 하시네
-
뭐지 아직 덜 큰건가?
-
용됸 받음뇨 5
흐흐흐
-
진짜 개ㅈ됨? 아프지는 않은데..... 아 ㅅㅂ ㅈㄴ 싫다 진짜 ㅅㅂㅅㅂㅅㅂ
-
삼수 고민 2
언미영생지 현역 33142 재수 기숙학원에서 의대목표로 한달에 500넘게 쓰면서...
-
화작 확통 과탐 0
메디컬 가고싶은데 화작 확통으로 갈수있나요 과탐은 생지 할껍니다
-
모두 손 꽉잡으세요!!!
-
ㅋㅋㅋㅋㅋㅋㅋㅋ 4
-
과탐표점+5임 아님 최종 설대식점수에 +5임?
-
수능전주에 수학 실모 1주에 20개씩 풀어제낀거 도움된듯뇨 6
수능때 ㅈㄴ 피곤해서 국어 예열 제끼고 자고 국어 치고 수학때 좀 피곤했는데 나름...
-
50일 수학에 집합은 없고 함수는 있던데 집합개념없이 함수를 어떻게 가르치나요??
-
독해방법 정립->기출이 나은것같고 양치기->시간관리까지 연습되는 실모가 나은것같은데...
-
수학 이거 10 11 12 13중에 한두개만 발 걸릴법한거 나왔으면 /...
-
과 어디까지 가능한가요?
-
행복해요 3
안녕하세요
-
가득해진다 수능 시즌 이후로 내가 그냥 대학 다닐 때 한 번 더 해서 결국 잘 본...
-
화1 표본수준을 분명히 알고있을텐데 난이도를 왤캐 자꾸 좆같이내는거지? 진짜...
-
국어 4등급은 4
역시 이유가있다.
-
아프리카 (숲) 에서 방송 진행합니다 닉네임은 고전파0
해석보고 빵터짐..ㅋㅋㅋ
선생 입장에서는 멘붕이 옵니다. ㅋㅋㅋ
-
아~ 감사합니다.
국어 공부때문에 힘들어 하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