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379481] · MS 2011 · 쪽지

2011-12-27 1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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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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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 CALDWELL | PHILOSOPHY NOW | SEP/OCT 2011


[…]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단치히Danzig의 부유한 상인이었고 어린 아투어Arthur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의 뒤를 잇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당시 상인이 되는 가장 중요한 지식 가운데 하나가,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배우던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 실제로 쓰이는 외국어였으므로 쇼펜하우어는 영어와 불어를 배웠고 둘 다 모국어인 독어 수준으로 했다. 영어와 불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하게 된 데에서 비롯된 것은, 당시 독어권 전역이 차츰 민족주의에 물들고 있었으되 쇼펜하우어는 국수, 국가, 민족주의라는 병적 아이디어에 전혀 물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는 이처럼 부유한 집안에서 코즈모폴리탄으로서의 교육을 받고 자랐으나 어두운 면이 없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아버지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쇼펜하우어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어렸으며 성격은 아예 반대라서 늘 밝고 생기에 넘치던 여자였다. 쇼펜하우어의 아버지가 자살하였을 때 어머니는 별 애도기간도 없이 단치히를 떠나 바이마르로 가서 프랑스 식 ‘살롱’을 열었고, (이 살롱에는 노쇠한 괴테가 자주 들락거렸다.) 소설가로서도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기실 작가로서의 명성은 나중에 가서도 어머니가 아들보다 훨씬 더 높았다.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의지와 투영으로서의 세상」(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9)이 출판되었을 때, 세상의 반응은 조용했다. 이 조용함은 그 뒤로도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아버지가 함부르크 운하에서 투신자살하였을 당시 쇼펜하우어는 한창 사춘기였던 열 일곱 살이었고, 비록 자신의 성정과는 아예 맞지 않는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되 아버지에 대한 의리 때문에 한 동안은 상인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유산은 쇼펜하우어가 평생 금전적으로 남한테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았고, 그러므로 결국에는 상인의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열정을 사로잡았던 철학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와의 의리를 저버렸다고 여겼던 어머니와는 사이가 안 좋았다. 어머니도 아들의 우중충한 성정과 논쟁을 좋아하는 성격을 싫어해서 아들을 멀리했다. “네가 잘 지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의 행복에 필요조건이되, 네가 잘 지내는 걸 직접 보는 것은 필요조건이 아니다.”고 어머니는 아들한테 보낸 편지에서 딱 잘라 말했다.

쇼펜하우어가 가장 잘 관계를 유지한 대상은 동물이었지 사람이 아니었다. 외모도 매력적이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도 어색했던 그는 연애에서도 성공한 적이 없다. 일찍이 (프로이드보다 훨씬 전에)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고 특히 ‘성적 충동’이라고 여겼던 그는 (프로이드는 쇼펜하우어한테서 받은 영향이 극히 적다고 일축하기는 했지만), 여자와 지속적으로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두 명의 사생아를 낳았지만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1851년에 쓴 에세이 「여자에 관해서」에서 쇼펜하우어는 “여자는 젊고 강하고 잘생긴 남자한테 끌린다.”는 진부한 말을 하면서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내기 이미 훨씬 전에, 그 이유로서 “이것은 건강한 인류의 번성을 위한, 인간이 속한 종의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것일 따름이다.”고 적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애초부터 철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자연철학으로 불렸던 과학에 대한 열망 (이 열망은 평생 이어진다.) 때문에 그는 먼저 괴팅겐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피히테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 괴팅겐을 떠나 베를린으로 간다. 이번에 나온 쇼펜하우어의 전기에서 저자 카트라이트는, 쇼펜하우어가 피히테에 대해 품고 있던 의견이 차츰 바뀌는 것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애초에는 흥미롭다는 것이었으나, 차츰 ‘이해가 안 간다’로 바뀌었고 피히테의 말은 그럴듯하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소리라고 결론짓게 된다. 스물 다섯 살 때 박사 논문을 제출했고 이 박사 논문은 곧 「충분이성 원리의 네 켜로 된 뿌리에 대해서」(Ueber die vierfache Wurzel des Satzes vom zureichenden Grunde)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박사학위를 받고서 드레스덴으로 내려가 칩거한 쇼펜하우어는 깊은 명상에 돌입하여, 플라톤과 칸트, 그리고 우파니샤드를 천착穿鑿하고, 마침내 「의지와 투영으로서의 세상」을 발표한다. 세상의 반응은 시큰둥하지 않았다. 아예 없었다.

「의지와 투영으로서의 세상」처럼 그저 뛰어난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필력마저도 당시 독일 철학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뛰어난 작품이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기실 당시 철학계를 지배했던 것은 헤겔이었고 헤겔은 쇼펜하우어의 숙적이었던 까닭에 쇼펜하우어가 완전히 무시 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에서 몇 번 강의를 시도했으나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할 것을 고집했다.) 그의 강의실로 찾아오는 학생은 거의 없었고, 죄다 헤겔의 강의실로만 몰렸다. 어떤 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텅 빈 교실에서 혼자서 강의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철학자 (더군다나 한참 선배)를 “서투르고 노쇠한 돌팔이”라고 부른 것도 쇼펜하우어의 명성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

COMMENT


»Die Welt ist meine Vorstellung:« – dies ist die Wahrheit, welche in Beziehung auf jedes lebende und erkennende Wesen gilt; wiewohl der Mensch allein sie in das reflektirte abstrakte Bewußtseyn bringen kann: und thut er dies wirklich; so ist die philosophische Besonnenheit bei ihm eingetreten.

“세상은 내 정신의 투영이다.” 이것은 ‘삶’과 ‘앎’을 누리는 만물에 적용되는 진리이되, 오로지 사람만이 사유적, 추상적 의식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진리이고,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철학적 슬기의 공을 이룬 셈이다.”

내가 지니고 있는 몇 권 안 되는 책 가운데 두 권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투영으로서의 세상」 의 독어판 상하권이다. 이 두 권의 책을 다 읽었느냐 하면, 물론 안 읽었다. 오늘 아침 첫 문장을 발췌하기 위하여 펼쳐보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책을 펼친 게 아마 십 년도 넘었지 싶다. 지금 보니까 상권의 200페이지 남짓 읽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 책에 도전할 일은 없겠지만 은퇴 후에는 꼭 읽어봐야지, 하고 버리지 않고 있는 책이다.

쇼펜하우어를 처음 접한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은 차치하고), 쇼펜하우어의 책 가운데 유일한 베스트셀러인 ‘인생론’의 영어판이었다. (이 책도 영어 번역판이 영어권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그 바람이 유럽으로 들어간 케이스이다.) 보통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대표적인 사람들 가운데 니체의 책을 읽을 때 (‘짜라투스트라’는 우리말로 된 번역판으로 읽었는데, 거의 앞뒤가 통하지 않았지만) 느꼈던 짜증이 아니라, 정말 말이 된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은 아마도 내가 헤겔을 그토록 미워하게 된 (대화를 할 때 두 이름이 나오면 나는 더 이상 대화를 못하고 그 자리를 뜬다. 그게 ‘헤겔’과 ‘사르트르’이다. 다른 사람과는 합일점을 찾을 공산이 있으나 이 둘을 들먹이는 사람과는 그럴 공산이 아예 없다.) 계기가 되었을 법도 하지만, 특히 스티브 잡스의 삶과 생각이 나한테 그토록 어필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 싶다.

쇼펜하우어의 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모든 진리는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먼저 조롱 받고, 그 다음에는 극렬한 저항을 받다가, 셋째 단계에서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Alle Wahrheit durchläuft drei Stufen. Erstens ist es lächerlich. Zweitens ist es heftig bekämpfte. Drittens ist es als selbstverständlich akzeptiert.

은 아마도 헤겔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나온 말일 공산이 크고, 여전히 겉멋들어서 헤겔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쇼펜하우어의 책을 펼쳐보기나 하는 사람마저 드무니까 언젠가는 자신의 말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던 그의 소망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성싶다. 그러나 그가 뿌린 씨앗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앞으로도 이어져 내려갈 것이며 극소수의 사람들한테는 삶에서 금과옥조가 될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는 소리가 위에 나오는데, 실제로 젊었을 적 사진을 보면 무척 못생겼었다. 늙으면서 인물이 산 케이스이다.)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 대상을 먼저 찾아야 한다.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자신이 할 몫은 무엇인지, 세상과 자신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 여행자가 높은 언덕에 올라서야 자기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이 어떤 식으로 엮이어 있는지, 어느 굽이를 돌아 왔는지를 볼 수 있듯이 삶에서 하나의 기간을 끝내었을 때나 아니면 죽음에 다가갈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의 행위에 대한 연결점들을 찾을 수 있게 된다.” ─Schopenhauer, “The Wisdom of Life 

앞을 내다보면서는 서로 다른 점 사이를 연결하는 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뒤돌아볼 때만 그 연결선이 보입니다. 따라서 삶에서의 점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뭐라도 믿어야 합니다. 그게 육감이든지 운명이든지 삶이든지 카르마이든지, 뭐라도 믿어야 합니다. 점들이 장래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될 것이라 믿을 때 자기 가슴이 시키는 일을 좇을 수 있는 자신감이 솟게 되는 까닭입니다. 설령 그러는 것이 이미 잘 닦인 길에서 벗어나는 일임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제 삶을 확 바꾼 것입니다. […] 반드시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도 찾아야 합니다. 일은 삶에서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는 까닭에 진정으로 만족하려면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일을 잘하려면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단념하지 마세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 수 있는 일이 으레 그렇듯 찾게 되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하는 일과의 관계도 점점 더 좋아집니다. 그러니까 찾을 때까지 계속 찾으세요. 대충 주저앉지 마세요. ─Jobs,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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