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롱히히 [310058]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18-08-25 02: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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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답풀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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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칼럼 - 오답풀이란 무엇인가 .pdf

* 스킵해도 되는 서론 *

저번에 예고했듯이 예전에 다른곳에서 제가 연재했던 글을 다듬어서 올리고 있는데요,

원래 순서대로 올리지 않고 비교적 시기에 맞을만한 글부터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직 올리지 않은 다른 칼럼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칼럼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 같은 느낌으로 생각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칼럼은 오답풀이에 대한 내용입니다

9월 모의를 앞두고 정리단계에서 참고하시거나,

또 9월 모의를 보고나서 오답풀이를 할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래 글에는 구체적인 수학문제로 한 예시들이 있었는데,

게시글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이를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이 예시들은 글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예시들이니,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첨부한 pdf 파일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아는 것의 시작,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봅시다. 

 저번에 얘기했듯이 수능시험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공부는 유한해요. 그러면 당연히 자기가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수능에 필요한 공부를 완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공부를 해도 해도 어느 수준까지만 오르다 더 이상 오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 이게 왜 그럴까요? 자기가 부족한 게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며 공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의 시작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잘 모르는 채 공부부터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고민할 여유를 주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과열도 참 문제지요.) 그러니 공부를 해도해도 모르는 건 계속 모르고, 틀리는 건 계속 틀리고 제자리 걸음인거죠.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알려는 사람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자기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세에서 중상위권과 상위권/최상위권이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무리 공부방법이 잘못돼도 열심히만 하면 보통 중위권까지는 금방 오르거든요.


 이렇게 써놓으니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고 어렵습니다. 말처럼 쉬웠으면 다 수능 만점이었겠죠. 그래서 우리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묵묵히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게 누굴까요? 우리가 풀고 난 시험지, 문제지들입니다.



* 오답풀이의 필요성

 시험에서든 평소에 공부를 할 때든, 우리는 문제를 풉니다. 문제를 ‘풀다’보면 달리면서 풀게 되기 쉬워요. 하지만 문제풀이 칼럼에서 얘기했듯이, 문제를 푸는 것은 단순히 연습 이상의 여러 가지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나 채점결과는 자신이 부족한 개념이 무엇인지,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려주는 아주 좋은 재료이지요. 하지만 문제를 달리며 풀다보면,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빠르게 달리면 지나간 풍경들이 기억에 잘 남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문제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온전히 얻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기 쉬워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점은 똑같아도 말이죠.

 문제지문제든 시험문제든, 문제들은 풀고 채점을 하고 나면 ‘여기 개념이 부실합니다! 여기 개념이 부실합니다! 여기 개념이 부실합니다! 여기 개념이 부실합니다!’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문제를 풀었다! 맞았다/틀렸다! 끝!’ 하는 것은 이런 외침들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그 문제들이 6,9월 평가원 모의고사 문제였다면, 이건 마치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후 결과를 보지 않는 것과 같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제 역시 좋은 공부재료입니다. 특히 수능시험에 있어서 기출문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시험에서는 문제를 맞히려고 풀지만, 평소에는 문제를 맞히려고 푸는게 아니에요. 문제풀이의 완성은 ‘풀어서 맞히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흡수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달리며 풀다보면 온전히 흡수를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따라서 문제를 풀며 정신없이 달리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오답풀이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오답풀이를 하는 목적

 ‘오답풀이’란 말은 아마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거의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일 겁니다. 하지만 오답풀이를 하는 목적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오답풀이를 하는 목적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문제를 푸는데 사용된 원리/지식에 대해 고민하고 정리하여, 다음번에 비슷한 원리/지식을 사용하는 문제를 보았을 때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게끔 하는 것.


쉽게 얘기하면 틀린 문제 또 안 틀리게 하는 것이죠 ㅎㅎ



* 오답풀이를 하는 방법

 ‘오답풀이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돼요?’

 이런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하지만 오답풀이를 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어요. 오답풀이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게 아니라 결국 자기가 나중에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나중에 알아볼 수 있게만 하면 돼요. 가령 다음날 일어나서 된장찌개가 쉬지 않게 끓여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책상에 메모를 붙여놓고 잔다고 할 때, 자기만 알아볼 수 있게끔 ‘된장찌개’라고만 써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오답풀이를 하는 방법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간편한 경우는 ‘머릿속 노트’에 오답노트를 하는 것입니다. 머릿속 노트에 오답노트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답노트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ㅎㅎ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오답노트를 하는 목적은, 문제에서 쓰인 원리를 확실히 이해하고 기억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입니다. 귀찮게 노트에 시간을 들여 정리하지 않아도 이것이 된다면, 애써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겠죠. 굳이 ‘오답풀이!’ 이렇게 이름 붙일 것 없이, 틀린 문제를 보며 ‘왜 틀렸을까’를 자연스레 고민하며 ‘머리에 새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물론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힘들다든가 하는 이런저런 단점도 있습니다만.


 역으로 종이노트에다가 풀이를 빼곡하게 베끼면서 오답노트를 하더라도, 자신의 부족한 점이 파악되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답노트의 큰 역할은,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남겨서, 나중에 노트를 보며 복습을 할 때 고민했던 기억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에요. (물론 부족한 점을 고민하고, 그 흔적을 남기는 과정 역시 공부입니다.) 뇌 속의 특정 기억으로 연결시켜주는 링크와 같은 것이죠.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풀이만 베껴 쓴다면, 나중에 오답노트를 보더라도 떠올릴 기억이 없죠. 고민한 기억이 없으니까요.


 언제나 강조하지만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닌 내용입니다. 오답풀이를 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하게 되는 고민의 내용 때문이지, 오답풀이라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없어요. 따라서 오답풀이를 하는 목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 방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목적만 잘 이룬다면 ‘머릿속 노트’에 해도 상관이 없고요, 역으로 아무리 열심히 풀이를 베껴도 목적을 모른다면 하는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사실 이 맥락에서 ‘오답풀이는 어떻게 하는 거에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좀 답답해요 ㅠㅠ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오답풀이를 하는 이유를 모릅니다’하고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 오답풀이를 하면서 고민/정리 해볼 만한 것들

 ‘자 알겠지? 오답풀이는 니맘대로 하면 돼! 칼럼 끝!’하고 끝낸다면 너무 무책임한 칼럼이 되겠죠? ㅎㅎ 위에서 언급한 오답풀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해볼 만한 고민들을 하나하나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오답풀이는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이니, 고민할 요소들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겠죠? 제 생각을 얘기 해볼테니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참고를 한다는 느낌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전 오답풀이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민/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 내가 이 문제를 왜 틀렸나

● 군더더기를 없앤 최적화된 풀이

● 다른 문제에도 쓰일만한 아이디어를 정리

● 왜 이렇게 푸는가? 풀이의 인과과정을 고민

● 문제의 출제의도는 무엇인가?



* 내가 이 문제를 왜 틀렸나

 오답풀이를 할 때 가장 기초가 되는 질문입니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아는 것의 시작이듯이, 왜 틀렸는지 아는 것은 맞는 것의 시작입니다. 오답풀이의 목적이 비슷한 문제를 다음번에 맞기 위해서라고 했죠. 그런 맥락에서 오답풀이를 하며 왜 틀렸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문제를 틀리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① 실수해서

② 헷갈려서

③ 못 풀어서


① 실수해서

 풀어서 3번이 나왔는데 실수로 4번을 체크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경우 빼고는, 실수는 대부분 실력이 확률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실력이 탄탄하고 안정적이라면 실수가 나올 수 없죠. 실수를 해서 틀린 걸 보면 ‘아 좀만 운이 좋았으면 맞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는 역으로 얘기하면 운이 나쁘면 틀릴 거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의 실수는, 시간에 쫓기며 하는 사소한 계산실수이죠. 시간이 쫓긴다는 말은 다른 문제를 풀면서 시간을 많이 소요했다는 뜻이고, 다른 문제를 풀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 이유는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간 분배를 잘 못해서 실력보다 시간이 더 부족했을 수도 있고 시간분배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실력이 충분하다면 시간 분배를 치밀하게 할 필요도 별로 없었겠죠. 따라서 시간부족에 의한 실수를 줄이는 일차적인 해법은 전체적인 실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력을 키우려면 뭐 ㅎㅎ 앞선 칼럼들에서 주구장창 얘기했듯이 개념공부하고 문제풀이하고 해야죠.


 그 외의 대부분의 실수 역시 개념이 미숙하거나 상투적인 풀이에 대한 연습이 부족해서, 쉽게 말해 공부가 부족해서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서, 만약 시험 문제가 죄다 3+5=? 와 같은 한자리 수 덧셈 문제였다면 실수할 일도 없었겠죠.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사고과정이 많지 않았다면 실수도 나오지 않습니다. 실수가 나왔다는 것은 문제를 푸는데 많은 사고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입니다. 


 한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사고과정이 A→B→C→D라고 합시다. 그리고 보통 A, B, C, D 중 2개의 사고과정은 교과서의 개념이거나 자주 나오는 상투적인 유형이에요. 쉽게 말해,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풀이에 필요한 4개의 사고과정 중 2개 정도는 이미 익숙해져 있어야 하는 사고과정들이라는 것이죠. 그 2개의 사고과정을 A, B라고 해봅시다.


 사람 머릿속에는 칠판이 있습니다. 문제를 풀 때와 같이 머릿속에서 정보들을 처리할 때면 그 칠판을 이용하죠. 만약 이미 익숙해져 있어야 하는 A, B의 사고과정이 미숙하다면, A, B의 사고과정에 대한 내용으로 칠판이 꽉 차버립니다. 그러면 C, D의 사고과정은 A, B의 사고과정을 처리하고 남은 협소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되죠. 처리할 사고과정은 많은데, 처리할 공간이 부족하다면? 처리과정에서 실수가 나오게 되죠. 좁은 여백에서 수학문제를 풀 때 계산실수가 나온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반면 공부를 제대로 했기에 A, B의 사고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능숙하게 처리가 된다면, 칠판에 A, B에 대한 내용은 보기 좋게 한 줄씩만 쓰고 C, D를 처리하기 위한 공간이 충분히 남습니다. 그러면 실수가 나올 확률도 훨씬 줄어들죠.



 A, B의 사고과정이 미숙해서 실수를 한 다음 시험이 끝나고 문제지를 봅니다. 답을 보고 문제 푼 것을 다시 보니까, A, B는 내가 ‘아는’ 개념이고 이를 토대로 C, D를 이끌어내는 별로 어려울 게 없었는데 ‘실수’한 것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이 실수는 A, B를 허술하게 알고 있었기에 나온, 예견된 실수입니다. 

 물론 평소에 A, B만 나오는 문제는, A, B로 칠판을 꽉 채워서 풀면서 맞았겠죠. 그래서 ‘아는 것’처럼 보였고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개념은 헷갈림의 여지가 없게끔 확실히 이해하고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농구선수가 드리블을 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해야한다면 경기 중에 슛을 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선수에게 코치가 ‘너 드리블 연습 좀 해라’ 했더니 ‘아 드리블 할 줄 알아요’한다면 어이가 없겠죠? 

 여담으로, 수학에서 교과서 개념이 ‘쉽다’고 무시하지 말고 숙달되고 확실히 알 때까지 공부를 하라는 것도 이런 맥락이에요. 그리고 어떤 것이 숙달될 때까지 공부해야 될 정도로 기본이 되는 것인지, 그 기준을 잡는데 교과서가 쓰이는 거고요. 


 그 외 실수를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풀이를 중구난방으로 쓴다든가), 이번 칼럼 주제가 실수는 아니기 때문에 이 이상의 경우는 다루지 않을게요.



② 헷갈려서

 문제란 개념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같은 개념에 대해 질문을 하더라도, 문제마다 다른 관점으로 물어보고 있죠. 어떤 문제를 풀며 헷갈린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관점으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개념을, 문제의 관점으로 보니 잘 모르겠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는 거지 아예 모르는 건 아니죠, 그래서 ‘헷갈리는’ 것이고요. 따라서 찍으면 확률적으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맞더라도 오답풀이를 해야겠죠? ㅎㅎ


 헷갈리는 것이 개념미숙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서, 문제를 풀며 헷갈리는 게 하나도 없게끔 애초에 개념을 완벽하게 공부 해놓으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문제에서 어떤 관점으로 물어볼지도 모르는데, 만약 문제를 풀며 헷갈리는 게 없게끔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개념을 ‘모든 관점’으로 보며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개념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은 무한합니다. 따라서 개념을 완벽하게 공부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고, 따라서 문제를 풀며 헷갈리는 부분들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다만 차이는 그런 헷갈리는 문제가 있을 때, 문제에서 제시하는 관점대로 다시 개념에 대해 고민을 해서 확실하게 알고 넘어가느냐, 아니냐죠. 

 원래 공부는 문제를 어느 정도 풀 수 있는 정도로 개념이해를 하고, 문제를 풀며 ‘아 이 개념을 이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구나’하며 개념을 바라보는 관점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을 한번 보고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없고, 오랜 시간동안 같이 지내면서 ‘어 이 친구가 이런 면도 있구나’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점점 깊이 아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문제에서 개념을 바라보는 관점은 시험의 성격마다 다르기 때문에, 시험에서 요구하는 관점들을 채워나가게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기껏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엉뚱한 공부만 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수능시험을 준비할 때는 기출로 공부하고, 내신을 준비할 때는 내신문제지나 선생님 말씀을 중요시 하라는 거죠. 또 국어영역의 경우 수능에서 요구하는 관점이 아닌, 엉뚱한 관점으로 지문과 선택지를 읽고 문제를 풀면 헷갈려서 틀리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고요.


 따라서 문제를 풀며 헷갈리는 게 있으면? 틀리든 맞든 상관없이, 확실히 알 때까지 고민을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다음번에 그 문제와 비슷한 관점으로 개념을 물어보는 문제를 풀면 또 틀리고, 제자리걸음을 하겠죠.



③ 못 풀어서

 아예 손도 못 대고 못 푼 경우는, 뭐 말할 것도 없이 개념 미숙입니다. 그 문제의 풀이에서 어떤 개념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확인하고, 본인이 부족한 개념을 찾아내서 공부하도록 하세요.


 물론 수학의 경우 문제의 표현방식 자체가 하나의 개념이 되어, 그 표현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문제가 안 풀리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개념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고, 상투적인 유형들도 연습이 되었다면, 접근조차 못 하는 경우는 웬만해서는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다보면 점점 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실마리를 잡아가게 되어있어요. 만약 아무리 고민해도 접근조차 못 하겠다면, 본인의 공부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니 좀 더 쉬운 문제부터 차근차근 푸세요. 물론 가끔은 표현방식이 지저분하게 까다로워서, 개념이해고 나발이고 창의력 대장들만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수능관점에서 썩 좋은 문제가 아니니 기죽지 마시길 바라요.


 그리고 문제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표현방식을 스스로 고민해서 이해하고 내가 이미 알고있는 개념과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소위 얘기하는 문제해결력입니다.이건 수능에서 요구하는 능력이고, 연습을 통해 길러야 하는 부분이에요. 따라서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울 겁니다. 그건 당연한 거예요. 하지만 시간을 두고 그런 문제를 하나, 둘 씩 풀다보면, 단순히 그 문제에 대한 실력뿐만 아니라 ‘수학실력’이 늘 것입니다. 역으로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조금만 모르겠어도 포기를 하고 답지를 보면, 접하게 되는 문제유형은 늘어나지만 몇 천 문제를 풀어도 문제해결력은 제자리걸음이겠죠. 


 ①, ②, ③의 과정을 통해 부족한 개념이 무엇인지 파악됐다면? 공부를 해서 보강하면 되겠죠.



* 군더더기를 없앤 최적화된 풀이

 종종 잠실역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때마다 몇 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는지 몰라서 헤매요. 물론 헤매긴 헤매도 결국 제대로 된 출구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집을 오긴 해요. 하지만 매번 이 출구, 저 출구를 다 왔다갔다 거리면서 헤매느라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몇 번 출구에서 타는지 확실하게 알아내서 메모라도 한다면, 그 뒤로는 헤맬 일이 없을 텐데 말이죠. 아직 모름 ㅎㅎ


 문제를 풀다보면 자주 나오는 유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걸 못 푸는 건 아니에요. 어떻게 막 뭐든 쓰다보면 답이 나오기는 해요. 하지만 이건 한번쯤 시간을 들여서 군더더기를 없앤 깔끔한 풀이를 고민해서 정리하면 좋아요. 군더더기를 없앤 깔끔한 풀이를 고민한다는 것은, 풀이에서 문제를 푸는데 기여하는 요소만 빼내어서 보기 좋게 정리한다는 것입니다. 문제풀이 칼럼에서 들었던 예를 다시 들면, 문제를 풀 때 ↑↑↓↓→↑↓→→←↑↑→↑ 이렇게 헤매며 풀었다고 해봐요.


 최적화된 풀이를 정리하는 것은 ↑↑↓↓↑↓→←↑↑→↑에서 빨간 부분은 뺀 →→↑↑→↑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면, 앞으로 같은 유형의 문제를 풀 때마다 훨씬 빠르고 실수 없게 풀 수 있게 되죠. 


 또 가끔 그 유형이 다른 개념이랑 복합해서 나오거나, 심화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본이 되는 유형의 풀이에 대해 사고의 군더더기 없이 확실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풀다가 헤매면서 포기를 하게 될 수도 있고, 끝내 풀어내도 실수를 해서 틀릴 수도 있습니다. 반면 정제된 풀이를 확실하게 알아둔다면, 헤매면서 소모되는 정신적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실수 없이 푸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다른 문제에도 쓰일만한 아이디어를 정리

 문제를 풀다보면 이 문제 말고 다른 문제에서도 쓰일만한 아이디어나 정보가 있습니다. 그런 건 일반화시켜 정리를 해보면, 다음번에 그 아이디어가 필요한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돼요. 또 공부를 하며 무언가 쌓인다는 기분이 들어 심리적으로도 좋아요. 참고로 일반화 시킨다는 것은 문제에서 제시하는 숫자나 상황이 아닌, 약간 변형된 문제에 대해서도 이 아이디어를 이용할 수 있게끔 정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 풀이의 인과과정을 이해

 ‘이렇게 하면 답이 나온다는 건 알겠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풀이를 떠올리지?’

 수학공부를 하며 가장 막막할 때가 이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수학문제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다가 도저히 모르겠어서 답을 봤는데, 답지대로 풀면 답이 나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음번에 나보고 풀라고 하면 못 풀 것 같을 때. 이러면 공부를 해도 아는 것이 쌓이지 않고 오히려 모르는 것이 쌓이는 것 같아 막막하고 불안해지죠.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풀이가 너무 우연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즉, 문제의 풀이가 인과과정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운 좋게 기상천외한 발상이 떠올려야만 가능한 확률적인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매번 문제를 풀 때마다 운 좋게 풀이가 떠오를 것이란 보장은 없고, 따라서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런 풀이를 떠올릴 수 있는 수학적 감각이 없을까 자책도 하면서요.


 풀이는 하나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야기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들은 아무런 연관 없이 따로따로 흩어져있지 않고, 인과과정으로 인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있죠. 만약 이야기에서 사건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면,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두고 ‘개연성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개연성이 없는 것이 컨셉인 이야기들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인 경우 개연성이 부족한 이야기를 보면 어이가 없어지고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죠.


 문제의 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답을 보고 어이가 없어지고 막막한 기분이 드는 건, 풀이가 단순한 수식(사건)의 나열처럼 느껴지고 수식들끼리 아무런 개연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막막한 기분을 없애려면 수식들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를 찾아서 이해를 해야 해요. 그리고 이건 직접 고민해야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답지에서는 'why'는 알려주지 않고 ‘how’만 알려주고 있거든요.답지에선 풀이의 결론이 되는 ‘사건’들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들이 연결되는 숨겨진 이유들은 여러분들이 직접 고민을 통해 알아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푸는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말이에요.


그림으로 본다면 이런 느낌이겠네요.



 답지를 보고 막막해지는 이유가 풀이가 우연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면, 답지의 과정에 이유를 고민하고 나면 풀이가 필연적으로 느껴집니다. 전자의 경우 풀이를 봐도 ‘운이 좋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 또는 ‘만든 사람만 풀 수 있는 작위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만, 후자의 경우 이 문제는 이러이런 자연스러운 풀이과정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풀릴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풀이에 필연성이 부여되어서 풀이과정이 납득이 되고, 불안감과 막막함이 사라집니다. 공부를 하면서 늘고 있다는 기분도 들고요. 또 괜히 부족하지도 않은 수학적 감각을 탓할 필요도 없겠죠.


 문제를 풀 때 답지부터 보지 말라고 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답지를 보면, 풀이의 결론이 되는 ‘사건’들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푸는‘방법’을 알게 되어도 풀이가 너무 우연적으로만 느껴지고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또 풀이를 머릿속에 남기려면 암기를 해야 하고, 이유도 모른채 암기를 하면 암기도 잘 되지 않을뿐더러 다음번에 제대로 써먹기도 힘들어요. 이야기가 개연성이 없으면 잘 기억이 나지 않죠?

 반면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을 하고 답지를 본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하 이렇게 하면 풀릴 수 있겠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요. 문제를 끝내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풀이를 구성하는 ‘사건’들의 뒷 배경이 되는 이유들에 대해 자연스레, 무의식적으로 고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ebs 공부의 왕도란 프로그램에 출현했을 때 했던 ‘답지도 문제지의 일부다’라는 말은 이런 맥락의 얘기였어요.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고 이야기의 줄거리를 만드는 주요사건들이 있죠. 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풀이의 시작이 되는 ‘사건’이 있고, 풀이의 핵심이 되는 ‘핵심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대부분 문제에서 물어보려는 주요 개념을 근거로 해서 등장합니다. 이 주요개념들을 토대로 풀이의 핵심사건을 유도해낼 수 있는가가 바로 문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능력, 즉 ‘출제의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머지의 자잘한 사건들은, 첫 도미노가 넘어지면 뒷 도미노들이 따라 넘어지듯이 ‘핵심사건’들에 의해 자연스레 도출되는 사건들입니다.


 답지는 풀이라는 이야기의 사건들을 단순히 나열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 사건들을 읽고 주요사건이 무엇이고, 각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 이해를 해야 비로소 답지가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게 되죠.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주요 사건이 등장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개념이고, 사건들을 연결해주는 매개가 되는 것 역시 개념입니다. 따라서 답지를 보았을 때 풀이의 사건들을 잘 연결시키고 이해하려면 개념공부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물론 역으로, 풀이라는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개념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를 분석하면서, 개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도 있고요.


 정리하면, 풀이에는 ‘핵심사건’들이 있고, 그 ‘핵심사건’들은 개념을 근거도 등장합니다. 따라서 답지를 보고 ‘왜 이렇게 풀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풀이가 어떤 개념을 근거로 등장했고, 그 개념을 근거로 이 풀이가 어떻게 등장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왜’를 고민하며 풀이의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했을 때, 비로소 풀이가 하나의 개연성을 가진 ‘이야기’로서 다가오게 된다는 겁니다. 이야기가 개연성을 가지면 기억하기도 싶고요.


 위에서는 꼭 수학에만 적용되는 것처럼 써놨지만, 풀이에 대해 ‘왜’를 고민하는 것은 모든 영역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 문제의 출제 의도는 무엇인가? (수능시험)

 출제의도. 아마 여러분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단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출제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막연하시리라 생각이 들어요. 그런 맥락에서 출제의도를 분석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제 나름의 정의부터 확실하게 하고 시작할게요. 


 출제의도란, 문제를 출제한 목적, 즉 문제에서 점검하고 싶은 개념, 능력입니다. ‘문제를 풀었다 = 문제에서 점검하고 싶은 개념이 숙지되어있다’가 되게끔, 문제는 출제자가 점검하고 싶어하는 개념을 잘 숙지하고 있다면 풀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어요. 따라서 풀이에서 핵심이 되는 ‘사건’의 근거가, 문제에서 점검하고 싶은 개념이 되죠. 출제의도를 분석한다는 것은, 풀이에서 핵심이 되는 ‘사건’을 파악해서, 그 ‘사건’의 근거가 되는 개념은 무엇이고, 그 개념으로부터 풀이가 도출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잘난 출제의도를 분석하면 좋은 점이 뭐냐? 제가 고민해본 내용들을 얘기해볼게요.


 첫째로, 문제의 근거가 되는 개념들이 무엇인지 알아서, 정신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를 풀며 대체 이 문제가 무엇을 근거로 나왔는지도 모르겠고 근본 없어 보이면, 시험을 위한 공부가 무한하게 느껴집니다. 왜냐면 근거 없이 문제를 만들면, 찍어낼 수 있는 문제야 무한하니까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한데, 해야 하는 공부가 무한하다고 느껴지면, 무엇을 공부해야할지 막막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분명 개념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은 무한하기에, 개념을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문제는 무한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수능에서 요구하는 관점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수능문제를 풀며 출제의도를 파악하여 모두 다 근거가 있는 문제임을 확인하면, 수능공부가 유한하게 느껴지고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로, 공부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입시시장이 크다보니 공부를 할 재료가 무한합니다. 동네서점만 가도 문제지 천지이고요. 대체 무슨 정보를 믿어야 하고, 무엇을 가지고 공부해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수능문제의 출제의도를 분석해서 수능에서 요구하는 능력과 개념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면, 그걸 중심으로 공부하면 되겠죠.


 셋째로, 문제를 풀 때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답에 확신을 가지고 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녁 때 쯤에 카레집 앞에 친구랑 서있다고 해봅시다. 친구가 묻습니다. ‘점심 때 뭐먹었어?’ 아무런 생각 없이 있다가 이 질문을 들으면 ‘얘가 왜 이런 질문을 하나’싶어 빠르게 대답도 안 나오고, 대답을 할 때도 그냥 근시안적으로 대답하겠죠. ‘냉면’하고. 물론 대답을 못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답을 하고나서도 질문에 제대로 대답이 됐나 찝찝해요. 하지만 친구가 질문하는 의도, ‘네가 점심 때 카레를 먹지 않았으면 저녁으로 카레를 먹으려한다’를 파악하고 답을 한다면 ‘아, 카레 먹어도 돼.’하고 빠르게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해줄 수 있고, 답을 하고나서도 ‘내가 질문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라는 느낌이 들어 대답에 확신이 생깁니다. 

 수능문제를 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가지고 문제에서 질문하는 대로 근시안적으로 대답을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내가 질문에서 요구하는 답을 한게 맞나 싶어 찝찝하기도 하고, 답에 확신이 안 서니 풀 때 망설이게 되어 문제가 빠르게 풀리지도 않습니다. 물론 엉뚱한 대답을 해서 문제를 틀릴 수도 있고요. 반면 출제의도가 파악되면 풀이에 확실한 근거가 확보되기 때문에, 풀이에 확신을 가지고 빠르고 정확히 풀 수 있어요. 물론 이런 느낌이 가장 강한 것은 국어영역이지만, 이는 다른 영역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넷째로, 풀이의 방향성을 가지고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문제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가지고 풀려고 하다보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서 어떤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문제를 풀며 출제의도가 파악되면, 풀이의 줄거리가 대충 보여요. ‘구체적인 풀이과정은 아직 모르겠지만, 이 문제는 A 개념을 가지고 a의 과정대로 풀릴 것이다’ 이런 식으로요. 마치 영화를 보면서 중간과정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결국 이길 거라는 느낌을 가지고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아예 처음부터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보다는, 줄거리가 잡힌 상태에서 자잘한 사건들을 채우는 쪽이 덜 막막합니다. 



* 오답풀이를 할 만한 문제들

 위의 내용을 찬찬히 읽고 잘 이해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오답풀이는 ‘오답’풀이지만 사실 틀린 문제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헷갈렸지만 찍어서 운 좋게 맞은 문제, 운 좋게 풀이가 떠올라서 풀기는 했지만 풀이의 확실한 근거를 고민해보고 싶은 문제, 어떻게 어거지로 풀었지만 좀 더 깔끔한 풀이를 고민해보고 싶은 문제, 6, 9월 평가원 모의고사 문제 등 푸는 것 이상으로 더 흡수할 거리가 있고, 고민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문제가 오답풀이의 대상이 됩니다.


 역으로, 틀린 문제이더라도 고민할 가치가 없는 문제는 오답풀이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입시시장이 크다보니 상품을 팔기위해 쓰레기 같은 문제들이 여기저기 참 많아요. 여담으로 이런 나쁜 문제들 때문에 수능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괜히 어렵게 공부하고 계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ㅠㅠ 풀이에 개연성도 없고 출제의도도 명확하지 않은 문제는 오답풀이를 할 가치가 없는, 영양가가 없는 문제에요. 이런 문제는 그냥 한번 풀고 잊어버리라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새로운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기 위해 사설모의고사를 푼다든가, 연계율 때문에 ebs문제를 푼다든가 하다보면 가끔 이런 문제들이 있죠. 이런 문제들은 틀려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이 문제는 참... 쓰레기 같구나 ^^’ 하고 넘어가주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구별해낼 자신 없으신 분은 기출부터 푸세요. (물론 이 말이 사설과 ebs문제집이 쓰레기집합소라는 말은 아닙니다. 좋은 문제도 더러 있어요.)



* 오답풀이의 장점

 오답풀이를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답풀이는 꽤나 귀찮은 작업입니다. 틀린 문제 가지고 그냥 고민 좀 하고 넘어가면 되지, 굳이 시간 들여서 오답풀이를 할 필요가 있나 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을 위해 오답풀이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할게요.


 첫째로, 오답풀이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부족한 부분을 알면, 부족한 부분을 보강할 수 있고, 이를 반복하면 계속 실력이 늘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위에서 많이 얘기했으니 또 안 할게요.


 둘째로, 오답풀이는 자신의 약점만 효율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복습법입니다. 개념이해 칼럼에서 했던 얘기인데, 개념마다 익숙해지는데 필요한 반복횟수가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만약 부족한 한 개념을 위해 이미 익숙한 개념까지 포함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복습을 한다면 그건 시간낭비일 겁니다. 

 반면 오답풀이를 해놓으면, 나중에 복습을 할 때 자신이 헷갈렸던 부분만 반복해서 볼 수 있어서 효율적이죠. 또,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복습을 하면, 처음에는 집중을 잘 하다가 정신적 에너지가 점점 소모되어서 정작 내가 부족한 부분에서 집중해서 공부를 못 하게 될 수도 있어요. 반면 내가 부족하고 헷갈렸던 부분만 정리를 해놓은 노트가 있으면, 정신적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서 헷갈렸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강할 수 있어요.


 이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특히 효과적입니다. 가령 수능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을 때, 무언가 공부는 해야겠는데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다 읽기는 부담이 됩니다. 그럴 때 내가 부족했던 부분만 모아놓은 오답풀이노트를 보면서 ‘그래 내가 이러이런 부분들이 약했지’하면서 복습을 한다면 좋겠죠.


 셋째로, 오답풀이를 하면 공부를 하면서 쌓이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공부를 하다보면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기는 한데, 막상 내가 뭘 공부했나 하고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시험이 다가오면, 특별히 모르는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뭔가 공부가 부족한 것 같아 불안해지죠. 그럴 때 오답풀이 했던 흔적들을 보면, ‘그래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왔구나’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심해져서 가시적인 흔적을 남기는 데만 열을 올리며 정작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분명 이는 정신적 안정감을 가지는데 도움이 됩니다.


 넷째로, 문제를 보는 눈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를 ‘풀기만’ 하면 문제의 껍데기만 보게 되기 쉬워요. 반면 시간을 내서 한 문제라도 해부해보면 문제의 알맹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문제를 볼 때도 알맹이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수 있어요. 그리고 문제마다 겹치는 것은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입니다. 가령 출제의도의 경우, 비슷한 출제의도를 가진 문제 30문제 푸는 것보다, 10문제만 풀고 1문제를 철저하게 분석해보는 편이, 다음번에 비슷한 출제의도를 가진 문제를 대비하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거죠. 동산만 100개 오르는 것보다 시간을 들여 산을 하나 오르는 게 더 넓게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 ‘종이노트’에 하는 오답풀이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분명 오답풀이는 입시공부를 하는데 효율적입니다. 그리고 실력을 안정화 하는데 오답풀이가 아주 효과적이기는 해요.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오답풀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알기 쉽게 얘기해서 오답풀이 굳이 안 해도 1등급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정적 만점은 좀 힘들지 몰라도.


 시간 내에 실수 없이 문제를 풀어야하는 입시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문제를 풀며 하는 생각의 과정들을 언어로 구체화해서 의식적으로 머리에 넣어놓는 편이, 나중에 꺼내서 쓸 때 훨씬 안정적입니다. 의식적으로 넣으면, 의식적으로 꺼내 쓸 수도 있거든요. 위에서 오답풀이가 실력을 안정화 하는데 효과적이라는 말도 이 말이고요. ‘감’은 ‘확률적인 실력’이라서 긴장을 하거나 시간에 쫓기다 보면 ‘감’으로 문제가 안 풀릴 때가 있거든요. (여담으로 자신감을 잃으면 ‘감’도 떨어집니다. ‘수학문제는 자신감으로 푼다’는 말도 이런 맥락의 얘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간은 뛰어난 학습동물입니다. 의식적으로 머리에 정보를 쑤셔 넣지 않아도 자연스레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가령 오답풀이의 기본이 되는 ‘틀린 문제를 토대로 내 지식의 허점을 찾아내어 보강’하는 일은 우리가 언제나 하고 있는 일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들을 축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에 오류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자연스레 그 지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수정하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이라는 개체가 지구상에 남아있지 못했겠죠. 가령 ‘버섯은 다 먹어도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독버섯을 먹고 고생을 한 후에는 자신의 지식에 대한 반성을 통해 ‘먹으면 안 되는 버섯도 있다’로 지식을 수정한다는 거죠. 지식의 오류를 발견하는 방법이 원래 문제를 풀어서 틀리는 것에서 독버섯을 먹고 고생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이것이 오답풀이와 다른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굳이 의식적으로 오답풀이를 하지 않아도, ‘입시’라는 세계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의 오류를 찾아내어 수정하려고 합니다. 안 그러면 시험에서 문제를 틀리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틀린 문제를 보고 ‘왜 틀렸지’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위에서 제가 늘어놓은 ‘풀이의 인과과정’이니 하는 장황한 이야기들은, 문제를 풀다가 답지를 보고 내뱉는 ‘아하’라는 감탄사 두 글자에 다 들어있는 내용일지도 몰라요.


 실제로 저의 경우, 고2 때 내내 수학은 1등급이 나왔지만 정작 제가 오답풀이를 처음 했던 건 고3 3월이었어요. 그리고 오답풀이를 가장 많이 했던 건 6월 모의에서 3등급을 받고 수능 ‘벼락치기’를 했던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고3이 된 후 공부를 꾸준히 하지 않았던 탓에, 수능까지 남은 시간에 비해 접해야하는 문제유형은 너무 많았고, 2주일 동안 하루에 150~200문제씩 문제를 풀었어요. ‘머리노트’만 이용하기에는 너무 부담되는 양이었고, 따라서 종이에다가 고민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이 택했던 공부법이죠. 그 덕에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흥미를 느낄 여유 없이 문제유형과 풀이의 이유를 머리에 쑤셔 넣는 것만 반복하면서, 수학적 자신감과 흥미가 말살 당했습니다. 공부의 왕도에서는 이게 무슨 저를 서울대로 이끌었던 ‘승리의 몰입공부법’처럼 나왔지만, 저는 이때 잃었던 수학적 자신감과 흥미를 지금까지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뭐 등급은 올랐습니다만. 

 공부내용에 흥미가 있으면,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뇌가 알아서 고민을 합니다. 굳이 의식적으로 머리에 쑤셔 넣고 외우려하지 않아도, 기억이 머리에 착하고 잘 달라붙고요. 실제로 제가 수학적 흥미와 자신감이 충만했던 중학교 때는, 한번 풀었던 문제는 잊어먹는 일이 없었고, 수학은 시험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고3 여름방학 이후로,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흡수하려면 공부내용을 언어로 구체화해서 머리에 억지로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런 강박증은 공부의 흥미를 앗아갈 수 있습니다. 공부가 억지로 머리에 지식을 집어넣어야 하는 아주 귀찮은 작업이 되고, 공부의 속도감을 떨어뜨립니다. 흥미가 떨어지면 위에서 언급한 맥락으로 공부효율이 떨어지기도 하고, 공부의욕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오답풀이에 집착하다보면, 오답풀이를 하지 않으면 문제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강박증이 생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오답풀이는 꽤나 귀찮은 작업이며, 공부의 속도감을 떨어뜨리는 작업입니다. 오답풀이를 할 부담감에, 문제자체가 풀기 싫어지고, 문제를 푸는 것을 계속 미루게 될 수도 있어요. 이건 주객이 전도된 꼴이죠. 문제를 흡수하는데 도움을 주는 오답풀이가 오히려 문제를 안 풀게 만드니. 또 모든 문제의 풀이에 인과과정을 고민하는 건, 마술을 보면서 보는 족족 트릭을 알아내려는 것처럼 재미없는 자세일 일수도 있습니다. 


 또 문제에서 배울 점을 절대로 한 번에 흡수할 수는 없어요. 문제를 ‘푸는’ 것에 대해 앞에서는 비판적으로 얘기했지만, 문제를 풀면서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것도 참 많습니다. 문제풀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단계까지는, 굳이 오답풀이를 해서 문제의 모든 정보를 억지로 쑤셔 넣는 것보다, 단순하게 문제를 ‘푸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일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억지로 정보를 다 쑤셔 넣으려 하다보면 속도감이 안 붙어서 공부가 재미가 없습니다. 문제를 푸는 것이 제자리걸음이 되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게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더 이상 문제를 ‘푸는’것 만으로는 실력이 잘 오르지 않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중상위권까지는 틀린 문제를 다시 한 번 풀어보고 고민해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감’은 계산을 하지 않는 자세에서 나옵니다. 수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아는 지식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게 중요하기에, 학습내용을 의식적으로 집어넣는 편이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모든 문제를 완벽한 계산아래 풀려고 하면 ‘감’이 떨어지고, 자신의 가능성을 자신의 의식과 지식 안에 가두게 될 수 있어요. 수학에서는 이런걸 보통 ‘직관’이라고 하죠. 1학년 때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하셨던 표현을 빌리면, 우리나라 교육은 직관을 죽이고 있습니다 ㅎㅎ 공부내용을 의식적으로 언어화해서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만능은 아닙니다.



* 칼럼을 마치며...

 위에서 오답풀이의 장점만 얘기해서 안 좋은 점도 얘기를 좀 해봤는데, 분명 오답풀이가 입시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효율적인 면은 있어요. 다만 이는 장단점이 있는 공부법이니, 이 칼럼 때문에 오답풀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얘기를 해봤습니다. 꼭 오답풀이 안 해도 문제 흡수할 수 있어요. 출제의도 뭔지 몰라도 1등급 맞을 수 있습니다. 모쪼록 좀 더 편하게 공부하자고 한 이야기가 읽는 분에게 부담을 주게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이만 총총.





Ps. 글 중간에 제가 고3 여름방학때 하루에 150~200문제 풀었던 얘기를 보고

'와 ㅅㅂ 좋은대학 가려면 이렇게 해야되나 보다' 하는 분이 계실까 노파심에 말씀을 드리면,

상황이 급해서 제가 소화할 수 없는 과도한 양을 했던 것이고,

장기적으로 봤을때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추천이에요.

실제로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서 9월 모의때 틀렸던 문제 중에 방학때 풀었던 유형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런 양을 풀 수 있었던 것도, 그전에 꼼꼼한 개념공부를 토대로 문제지 한권정도를 풀어놨던 상황이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저런 자극적인 것에 혹해서 상황에 맞지 않게 억지로 따라하면서 한숨쉬는 분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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