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하세 [283096] · MS 2009 · 쪽지

2011-03-25 22: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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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3수생의 수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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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정말로 화를 냈다.

왜 이모양이냐고

그 당시에는 난 그저 억울 한 마음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신나갔지.

원서를 썼다.

가군 경인교대
나군 부산대 경제
다군 건국대 상경

나는 그 당시에도 부산대 경제를 안전빵으로 생각하고

거기 가서 반수 할 생각을 했었다.

아참, 난 원서 쓰기 전에 이미 재종 선행반을 등록해서 다니던 상태였다.

아버지의 강압으로..

난 아버지의 모든 선택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재종 선행반 가라했던 선행만큼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부? 내가 나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안된다.

며칠 다녀보니 정말 죽을맛이더라.

내가 인상이 좀 어둡고 날카로워서 그런지,

말도 한마디 안걸어서 밥도 계속 혼자 먹었다.

10시까지 억지로 자습해야되는것도 너무 싫었다,.

경인교대를 썼었는데

마음에도 없던 교대를 쓴 이유가...

정말 한심하다.

교대 1차를 붙으면 면접을 빌미로 학원을 빠질 수 있다는 것.

정말 한심하다......

물론, 1차에서 떨어졌다.

부산대 발표를 기다렸다.

정말 공부가 힘들어서 부산대 붙으면 반수고 뭐고 계속 다닐 생각이였다.

학원선생님 컴퓨터로 합격발표를 봤다.

24번이었다.

뭐, 결국 떨어졌다.

건대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정말로 현역, 재수 총 6군데 대학을 넣었는데

아무데서도 나를 오라 하지 않아서 3수를 해야했다.

정말 공부는 3월달 부터 시작했다.

선행반도 중간에 끊었다.

너무 공부가 안되서 부모님꼐 울고불고 해서 1달만 나 독학 좀 하겠다고 해서

2월 1달은 도서관에서 계속 보냈다.

물론 공부는 안했다. 대신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재수 때 근현대사에서 현대사 부분(박정희 시대)문제만 2개를 틀렸다.

그게 자꾸 생각나서 현대사 부분 책만 자꾸 봤다.

지금은 현대사 책 읽는게 내 취미가 되었다. ㅋㅋㅋㅋ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인명과 사건을 대라면

동년배 사이에서는 누구보다 많이 댈 자신있다 ㅎㅎㅎㅎㅎ 자랑 ㅈㅅㅈㅅ

좀 사이코 같게 보일진 모르겠지만,

난 5.16 쿠데타 관련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3수 할 용기를 얻었다.

박정희는 목숨을 걸고 5.16을 해서 권력을 거머쥐었다.

나의 3수는 아무것도 아니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자존심을 걸고 해보자. 이러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학원 생활을 했다.

정말로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정말로 반 아이들이 나에겐 말을 안걸더라.

고등학교 후배가 한명 있었는데, 처음에는 나에게 좀 친한 척 하더라.

그런데 6월 즈음이었나.

내가 자고 있는데 잠결에 걔가 나를 까는게 들리더라.

"아 이 xx 같은 놈 내가 괜히 아는 척 했다"

그 순간 벌떡 일어나서

두들겨 팼

어야 했지만...

나에겐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냥 나중에 곱씹으면서 혼자 억울해했다.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어린 놈한테 저런 욕을 들어야 할까?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그당시 나는 정말로 그 일 하나때문에 자괴감에 빠졌다.

그 일 이후로, 난 언제나 마음속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공부했다.

"난 공부를 잘 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부마저 못하면 그야말로 쓰레기가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자기학대를 많이 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래도 기분 좋은건, 참 나도 대인배 되기는 글렀지만...

그 후배는 나보다 대학을 못갔다.

통쾌하다.

하여튼, 그런 일도 겪으면서, 6월 모의고사를 쳤다.

1(98)1(98)2(92) 1(99)1(100) (2011은 웬만한 대학이 사탐 2개만 봤으므로 사탐 2개만 정진했다)

희망을 가질만한 성적이었다.

그해 여름

가끔씩 공부가 안되면

조퇴를 해서 도서관 가서 책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그런식으로 큰 슬럼프 없이 공부를 했다.

특히나 여름쯤 되면

수험생들은 많이 지치는데,

무작정 공부에 매달리기보다는

책도 좀 보고 친구도 만나고 그런식으로 살짝살짝 자신을 풀어주면 좋은 것 같다.

뭐 그렇다고 3박 4일씩 놀러가고 하면 안되겠지만 ㅋㅋㅋ

그렇게 9월 모의고사를 봤다.

언어(100) 수리 (96) 외국어 (99) 윤리 (95) 근현 (100)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도 자만하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자만이란, 자신감에서 노력이 마이너스 된 것이다.

내가 자만하지 않았다는 말은,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말이다.

심지어, 9월 모의 뒤에 친 사설 모의고사에서는 반 1등을 했다.

우리 반이 학원에서는 2번째 반이었는데, 반 1등을 했고 전교에서는 6등을 했다.

정말로 자신감이 계속 붙었다.

나는 그때, 단어장 앞에 이러한 글귀를 적고 공부했다.

"예봉이 꺾이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 들이치면 된다!!!"

삼국지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ㅋㅋㅋ

정말로 내년에는 활짝 웃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진했다.

10월때 친 학원 모의고사 또한 반 1등을 했더라 ㅎㅎㅎ

물론 우리 반에 나보다 수능도 잘보고 대학도 잘 간 애들이 좀 있다...

그렇게 수능을 쳤다.

언어...내가 풀기에 정말 어려웠다.

일단 듣기가 무엇보다 어려웠다.

난 정말 듣기 2개 틀린 줄 알았다.

그렇게 우울하게 수리를 봤다.

수리는 내가 보기엔 정말 쉬운데,

난 잘 못풀겠더라.

그렇게 시험 2개를 우울하게 끝내고, 친구랑 같이 밥을 먹었다.

이 친구는 앞서 말한 학원 자습실 알바했던 친구인데, 3수도 같이 하게 되었다. 이친구 덕분에 3수때 밥은 혼자 먹지 않아도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자괴감이 가득 찬 말들을 정말 많이 뱉었다. 이번에도 안될 것 같다고.

그렇게 우울하게 외국어를 봤다. 외국어는 내가 정말로 ebs 지문을 달달달 외우다시피해서 좀 쉽게 풀었다.

사탐은 내가 풀기에 정말 쉬웠다. 내가 공부한 2과목만.

그래도, 시험을 다 치고 나니

정말로....지금에서야 웃으며 얘기하지만,

맨 처음 드는 생각이

"부모님이 마중나와 계시면 안되는데......"

정말로 난 시험을 망친 줄 알았다.

밤 하늘을 쳐다보며 진짜 자살 생각도 좀 했었다.

그때 집으로 돌아갈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지금도 말하기를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의 표정이 지금도 꿈에 나타나 벌떡 깬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집에 전화했을때, 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는 그때 생각만 하면 정말 살떨린다고 하신다.

내가 얼마나 못쳤기에, 전화를 안받냐면셔...

퇴근길에 지하철을 보면서 아버지 또한 뛰어 들 생각도 하셨단다.

지하철의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행복해 보이는데 난 왜이렇지 하는 생각도 하셨단다.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언어부터 매겨봤다.

90점. 9월은 100점이었는데. 그래도 정말 선방한거라고 느꼈다.

수학을 매겨봤다. 89점 혹은 93점 이었다.

주관식 4점짜리 하나를 내가 찍었는데 웬지 맞은것 같아서였다.

답이 19였는데 내가 무심코 16분의 3 해서 19 했던 생각이 났었다.

그런데 내가 16분의 3을 썼는지 16분의 5을 썼는지 헷갈려서 보류해뒀다.

외국어는 96점이었다.

듣기 하나를 틀렸다 ㅠㅠ 그거 하나만 맞췄어도 더 좋게 원서를 쓸 수 있는건데...

윤리랑 근현은 둘다 만점이었다.

이정도면 그렇게 망친 건 아니다 싶어서 아버지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을 때의 목소리 또한 잊지 못한다.

아버지가 보증 사기를 당하셨어도 그런 목소리는 안 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수능 망친거 같진 않다고 하니 알았다면서 조금 밝아지셨다.

조금 있으니, 수능 같이 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성적을 대충 얘기하니, 지금 당장 논술학원을 가자는 것이었다.

수시 넣어놓은게 몇개 있었는데, 지금 후딱 시작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달려가서 논술 몇자 쓰다가

도저히 공부가 안되어서 일찍 나왔다.

이것저것 너무 신경쓰였다. 수학 주관식 맞췄는지 틀렸는지도 신경쓰이고

언어 컷이 90일것인지 91것인지도 너무 신경쓰였다.

수시를 치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애초에 발논이라, 우선컷이라도 111로 맞춰야되는데

하는 생각에서였다. 수리 등급컷도 89이냐 90이냐가 너무 신경쓰였다.

그렇게 1주일동안 논술을 다녔는데, 정말 집중도 안되고 글도 안써졌다.

논술 시험지에 계속 내가 16분의 3을 썼는지 16분의 5를 썼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그걸 쓰고 있었다.

정말 한심한 짓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ㅋㅋ

고대 정외, 연대 행정(이건 10월달에 쳤었다) 성대 경영

다 떨어졌다. 111맞추면 다 붙여줄 줄 알았더니.


이렇게 논술을 보고 나서 아무 생각없이 놀았다.

정말 한개만 붙여줍소사 했었다.

대망의 12월 8일.

모교에 성적표를 받으러 갔다.

받으러 가면서도 계속 불안했다.

수학도 웬지 한개 마킹 잘 못 한겉 같았고,

언어도 내가 매긴게 정확하지 않은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었다.

성적표가 a4지처럼 나와있던데,

받자마자 일단 손바닥으로 가리고 등급부터 슬쩍 확인했다.


111 11

일단 정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손바닥을 뗐다.

언어 96 수리 99 외국어 99 윤리 99 근현 98

수리 표점은 144점이었다. 만점이 147점이었는데

144점이면 원점으로는 96점이란 소리였다.

주관식 찍은 것도 맞췄고, 계산실수인줄 알았던 3점도 결국 맞췄다는 결론이었다.

정말로 기분이 째지는 줄 알았다.

난 지금도 기억하는 행북한 2순간이 있다.

성적표를 받았을때, 고대 추합 합격 화면을 보는 순간.

이번만큼은 승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또한 정말로 기뻐하셨다.

원서는

고려대 국제어문 서강대 경영 시립대 경영

이렇게 넣고 1달동안을 또 똥줄태우며 기다렸다.

시립대 경영을 먼저 붙었다.

1년 장학생이었다.

일단 처음 받아보는 합격이라 너무 기뻤다.

고려대는 우선 탈락하고, 서강대는135번이었다. 135번이면 절대적으로 되는 번호였다.

그런데,

연대경영 경제가 폭발 하는 통에

서강대 경영 2자리 수에서 멈출거라는 분위기가 오르비에 파다했다.

절망했다.

고대도 우선 컷이 생각보다 높았다.

그당시의 심경또한 비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난 아직도 어린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 일반 선발 발표때 22번을 받았다.

작년에 23번까지 돌았다는데, 정말로 똥줄을 또 태워야했다.

서강대 경영 또한 암울한 상태였다.

그렇게 2월 9일이 왔다.

고려대 합격했다.

1차가 22번까지 붙었더라. 그 뒤에도 몇명 더 붙었다.

정말 기뻤다.

정말정말 아주 너무 기뻤다 ㅠㅠ

서강대 경영은 내가 고대 새터갔을때 추가합격 문자가 왔더라.

결국은 190번대까지 돌았더라 ㅋㅋㅋ

처음으로 3승 해보는 순간이었다.









정말로 그냥 제 생활을 생각나는대로 적었습니다.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정말로 적을 말이 없어서 안적었습니다.

중요한건, 얼마나 엉덩이 오래 붙이고 있느냐 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수능 준비하시는 분들,

100프로 성공한다고 제가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앉아 있을수록 분명 성공확률은 높아집니다.

그리고,

공부 정말 열심히 해도 실패 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정말 성공 못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면, 정말 공부 방법이 잘못되지 않는 한 (예를들면 무조건 양치기 개념 필요없어 이런)

성공 합니다.

수험생 여러분, 정말 힘내십시오.

원서영역이 필요없을 정도의 성적들 거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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