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PPL 칼럼 84호] [심층분석] 윤쏘공 이후 올해 수능 국어를 예상해보자
안녕하세요 PPL 국어연구소의 이낙원 선생님입니다.
이번 주는 핵폭탄급 이슈로 수험가가 아주 뜨거웠는데요,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에서의 소위 ‘킬러 문항’ 배제를 지시하며 국어 비문학 문제를 콕 집어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국어 독서 영역 문제를 ‘사교육이 없으면 풀 수 없는 문제’로 규정하고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과도한 난이도와 융합 교과형 지문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였습니다. 이를 연초부터 지시했지만 6평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수능을 150여 일 앞둔 시점에서 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수능 기조가 바뀌는 것은 몹시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번 조치에 대해 수험생 여러분은 반쯤 공감하면서도 반쯤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요.
첫째로, 수능 독서 영역이 교육과정 외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일선 학교에서 2학년 국어 시간에 <독서> 과목을 가르치고 논리적 독해 능력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어 문제라고 과학이나 경제 소재를 내지 못한다면 이는 ‘독서’라는 과목의 탄생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이공계 논문도, 상경계 논문도 결국은 한국어로 적혀 있기에 대학 가서 이런 어려운 글들을 읽을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는 것이 ‘독서’의 존재의의이기 때문입니다. 또 수능 비문학이 틀렸다고 규정되면 왜 LEET나 PSAT 언어 영역은 문제가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됩니다.
둘째로, 수능 독서 영역이 사교육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다는 점입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내신에서 출제 난이도가 아주 까다로운 비문학의 경우 젊은 교사에게 이른바 ‘짬처리’되고 있거나 문학이나 문법 위주로 출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사실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요, 작년 실시된 2023학년도 중등교사(중고등학교 교사) 임용시험의 국어 1차 시험지를 보면, 화법, 작문, 문법, 문학에 관한 내용만 있고 비문학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서 논리보다는 교사 지망생들의 개념 및 이론 숙지만 검증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공교육에서의 독서 교육이 어렵고, 학생들이 사교육에 내몰리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로, 대통령실이 비문학만 콕 집어 지적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국어가 지나치게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2022학년도에는 국어 영역 언매 기준 1등급 컷이 81점 선에서 형성되면서 94점을 받은 학생이 백분위 100이 찍히는 마그마 수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수험생들은 탐구 영역에도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갈수록 지저분해지고 스도쿠처럼 꼬아 내는 문제에 작년 수능 사회문화는 2% 정답률의 행정고시 문제 같은 문제가 등장하고 1컷은 42에서 형성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저는 잇따른 시험 범위 축소, 변별 가능 수단의 축소를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내신도 시험 범위가 적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문제가 어려워지듯, 최근 수능은 약 7년간 수학과 탐구는 줄곧 내용을 더하지는 않고 덜어왔고, 영어는 절평화가 돼오면서 국어 하나로 학생들이 아름답게 변별되어야 했기에 국어의 어깨가 무거웠는데 국어만 콕 집어 지적하더니, 비판이 일자 부랴부랴 다른 과목도 문제라고 첨언했기에 숙고 끝에 나온 정책인지에 대한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 이유로 많은 공감과 회의가 드는 결정입니다만, 기존의 괴랄했던 국어 문제가 정상화되는 방향성에는 공감이 됩니다. 다만 그 결단이 수능 150여 일 전이었던 것은 약간 사려가 깊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해야 할 것은 당장 올해 수능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를 구상해서 이에 맞게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가능성을 예상해보고 있습니다.
물수능 - 상위권에게 가장 잔인한 조치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물수능 가능성은 낮지 않나 이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정치적 이유와 관련이 깊은데요, 수능 150여 일 전 갑작스러운 기조 변경은 모든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이 사실이고, 야당과 친야(親野) 언론들은 신이 나서 매일 같이 대통령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수능이 물수능이 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심히 가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천연자원 없이 인적자원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나라는 유독 교육열이 과도하고 전 국민의 문제로 여겨지는데, 물수능으로 인해 변별이 안 되고 운 좋아서 하나 더 맞힌 학생과 실수해서 하나 더 틀린 학생의 대학이 서너 단계 차이가 되는 시험이 될 경우 당장 내년 총선을 치르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선거연령의 인하로 인해 생일이 지난 고3부터 투표가 가능해졌기에 직격탄을 맞은 내년 고3과 대1들이 이른바 정권 심판을 단행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변별은 돼야 하고, 비문학 킬러는 못 내는 어려운 과제를 평가원이 떠안게 되었습니다.
2. 문학과 언매/화작의 초고난도화
실제로 이 어려운 과제에 많은 교수 및 교사들이 수능 출제를 기피하는 분위기라는 것이 현장의 반응입니다. 이 상황에서 어려우면서도 비문학은 쉬운 출제를 하는 방법은 몇 개 없습니다. 일단 공교육이 잘해왔던 문학과 문법을 어렵게 내는 것입니다. 이 경우 가장 시비가 없고 대통령실도 공교육에서 배운 작품들이 나왔으니 이것까지 문제 삼지는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원가에서는 문학과 문법이 어렵게 출제되던 과거 기출을 발 빠르게 분석하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화작은 어렵게 낼래야 어렵게 낼 수가 없는 과목이니 2019학년도 수능 때처럼 기형적으로 긴 지문과 까다로운 선지로 학생들을 곤혹스럽게 할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3. 인문(철학/역사) 지문의 초고난도화
사실 비문학 없이 국어를 이쁘게 변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과목융합형, 즉 사회/과학/기술 지문을 지적했기 때문에 출제위원들은 이 문제를 아주 쉽게 내야만 합니다. 잇따른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2학년도 수능의 브레튼우즈 체제 문제(경제)와 2023학년도 수능의 로그를 활용한 게 다리 문제(수학·과학)가 지적되고 있기에 출제위원들이 보란 듯이(?) 이걸 어렵게 낼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럼 대통령실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만한 문제는 철학과 역사 문제입니다. 지난 수능에서 철학과 역사가 어렵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2015학년도 B형 수능에서 신채호/칸트를 통해 가능성은 보여주었지만 지금 난도에 비하면 지나치게 평이한 문제들입니다. 이런 부류의 문제들이 어렵게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직접 언급된 과학/경제와 달리 인문 지문은 타 교과와의 연계성이 0에 수렴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기에 출제위원들이 적은 부담으로 출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합니다. 다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처 가능한 건 역설적이게도 학원가뿐이니 사교육 카르텔을 무너뜨리겠다는 대통령실에 의중에 부합하는 지시였는지는 아이러니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은 지금의 사교육 과열은 의대지상주의 때문이라고 의대 정원을 늘리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0세대 1타 강사, 사교육의 아버지다운 예리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의사들의 이해관계에 첨예한 사안이라 근시일 내에 실현 가능한 방안인지는 모르겠네요. 앞으로 우리 교육과 수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지 귀추를 주목해봐야겠습니다. 긴 분석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낙원(現 수능 국어 강사/前 교사/한국정치학회 선거 전문가 자격교육 이수)
칼럼 제작 | Team PPL 국어팀
제작 일자 | 20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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